7년 전 뉴욕 근처의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 포인트)를 방문하러 가던 길이었다. 자동차로 가다 어느 조그만 시에 도착했다.
가벼운 나들이 차림의 남녀노소들이 공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학생들의 행진곡 연주에 맞춰 군복을 입은 60∼70대 백발 노인 몇 명이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노병(老兵)들의 가슴에는 훈장이 몇 개씩 달려 있었다.
노병들은 알고 보니 한국전쟁(6·25전쟁) 참전용사들이었다. 무슨 행사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행사 도중 시장이 그들을 한 명씩 호명하며 참전 사실을 간략히 소개하자 수백 명의 주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노병들은 씩씩한 거수경례로 답례했다.
부러우면서도 한편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그 전쟁이 터졌던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왔던 참전국 용사들이 군복차림에 백발을 휘날리며 자랑스럽게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모습. 전우들이 묻힌 유엔군 묘지나 참전기념비 앞에 선 그들의 모습이 이제 낯설지만은 않다.
이런 일도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소도시는 사단장과 육군본부 주요 참모부장을 지낸 우리 예비역 소장을 초청, 그를 위해 매년 특정일을 ‘○○○장군의 날’로 선포했다. ‘한미 군사관계에 기여했다’는 것이 이유. 십 수년간 그의 현역과 예편 후 생활을 지켜보면서 그 때처럼 그렇게 어린이같이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지금도 “군대생활 30여년 동안 그렇게 신나는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노병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바로 ‘명예’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노병들이나 장성 출신들의 세계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성싶다. 연령층에 상관없이, 그리고 장성출신이든, 사병출신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역으로 군대에 갔다온 남성치고 그것을 명예롭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 집단의식이 비교적 강한 사관학교나 ROTC장교, 해병대 출신 등은 다소 다른 것 같다.
현역생활을 명예롭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3년간 썩었다’는 등의 자조적 표현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신성한 병역의무’ 수행을 왜 이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 여기에 병역비리의 본질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건강상 또는 다른 합당한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받아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문제는 멀쩡한 사람이 돈이나 ‘백’을 써서 군복무를 기피하는 사례다. 병역비리가 여전히 뿌리뽑히지 않는 큰 이유는 군복무에 명예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본질을 외면한다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박노항’은 계속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 ‘군대는 안가는 게 남는 것’ ‘군복무는 손해보는 것’이라는 풍조가 살아 있는 한 법과 형사처벌만으로 병역비리는 근절될 수 없다. 군복무자들의 명예감정을 높여주는 주변 환경의 조성에 바른 해답이 있다고 본다.
육정수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