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
‘골프여왕’ 박세리는 미국LPGA투어 데뷔 첫해인 1998년 초반 부진 속을 헤맸다. 명색이 한국 최강인데 미국 무대에서는 우승 언저리에도 못 갔고 박세리에게 거액을 투자한 스폰서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상반기에 계속 하위권을 맴돌면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일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박세리는 5월 LPGA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두며 그 해 4승이나 올렸다.
똑같이 삼성이 후원하고 있는 이형택도 박세리와 비슷하다. 지난해 후반기 US오픈 16강과 삼성오픈 4강 등 눈부신 전과를 거두며 세계 랭킹 80위대까지 진입했지만 올 시즌 초반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번번이 1회전 탈락하면서 ATP투어 대신 한 단계 낮은 챌린저대회에나 출전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형택은 줄기차게 투어의 문을 두드렸고 2주 연속 상위에 이름을 올리며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깨끗이 씻어냈다.
특히 이번 결승 진출로 이형택은 비로소 어디서나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스트로크, 서브, 발리 등 기본기는 물론 위기대처능력과 경험까지 늘었다는 뜻. 특히 준결승에서는 평소 잘 쓰지 않던 백핸드 슬라이스를 적절히 구사해 역전승의 발판으로 삼는 임기응변까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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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이 거듭된 패배를 맛본 ATP투어의 인터내셔널 시리즈는 세계랭킹 40∼80위 선수가 대거 출전하며 이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 작은 실수 하나로도 승부가 갈리는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이형택은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최근 랭킹 포인트를 대거 확보하면서 이형택은 시즌 후반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후반 거둔 성적을 올해에 다시 올리지 못할 경우 랭킹이 크게 떨어질 우려가 있었으나 미리 포인트를 벌어둔 덕분에 한결 여유 있게 된 것.
특히 이형택은 약점으로 지적된 클레이코트에서 오히려 승승장구, 역시 흙코트에서 치러지는 이달 말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