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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헝가리에서 날아온 낯선 멜로영화

입력 | 2001-05-07 13:26:00


슬라브족의 대륙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마자르족으로 이뤄진 `인종의 섬' 헝가리는 우리나라 영화팬에게는 낯선 변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붉은 시편」의 미클로스 얀초나 「메피스토」의 이스트반 자보로 대표되는 거장의 계보를 떠올리면 이 나라가 지닌 영화적 역량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짐작케 한다.

여성감독 크리스치나 딕의 「야드비가의 베개」는 헝가리적 영화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수작이다.

장대하게 펼쳐진 대평원을 무대로 삼는 호방한 스케일이라든지 의상박람회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헝가리 민속의상의 경연, 헝가리 무곡'의 선율을 연상시키는 유장한 극 전개 등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크리스치나 딕은 이 영화로 살레르노 국제영화제 대상과 헝가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며 헝가리 영화계보의 적자임을 인정받았다.

팔 자바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평화로운 헝가리의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2대에 걸친 불륜 드라마를 서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골청년 온드리스는 잔인한 운명의 여신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아버지 약혼녀의 딸이었던 야드비가를 신부로 맞는 기쁨에만 들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야드비가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며 처녀가 아님을 고백하지만 온드리스는 그녀의 부정을 받아들이며 가정의 평화를 가꿔나간다.

조국 헝가리가 1차대전의 포연에 휩싸여 부부가 생이별을 하자 야드비가는 첫사랑을 찾아나서는데 전쟁터로 떠났던 온드리스가 경찰의 밀정이 되는 조건으로 조기귀환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만다.

온드리스는 불륜의 씨앗을 둘째아들로 받아들이면서까지 야드비가를 붙잡으려하지만 사랑에 눈먼 여인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야드비가는 연인의 배신으로 가족과 사랑을 모두 잃는다.

야드비가로 등장하는 일디코 토트는 한때 연인이었던 빅토르 보도를 온드리스역에 적극 추천함으로써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스크린에 재현했고, 정부인 프란시로 출연한 로만 루크나르 역시 불륜행각으로 소송에 시달리고 있을 때여서 사실적인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슴 시린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123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26일 서울 코아아트홀에 간판을 내건다.

[연합뉴스=이희용 기자]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