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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5조 추경예산 조기편성]돈 풀어 경기부양 선심 논란

입력 | 2001-05-07 18:28:00


《추가경정예산 조기편성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여당과 경제부처 사이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추경예산 편성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여당의 방침에 대해 ‘전형적인 선심행정’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경제부처 입장▼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6월중 실업대책 등을 위해 5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기로 당정간에 합의했다”는 민주당 강운태(姜雲太)제2정조위원장의 4일 발언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거듭 ‘해명’했다.

진념(陳稔)경제부총리와 김진표(金振杓)재경부 차관 등 재경부 고위당국자들은 “추경편성여부는 6월에 결정할 사항이라는 정부의 기존 방침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아직 추경 편성 여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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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부는 올해 예산을 상반기에 대폭 앞당겨 배정했고 실제로 2분기(4∼6월)중 집중적으로 돈이 풀려나가는 점을 감안할 때 섣부른 추경편성이 물가불안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하고 있다.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당초 생각한 시나리오중 비교적 나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재경부 예산처 등이 그동안 ‘가급적 추경편성은 없다’고 공언해온 점도 정부가 추경편성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5월까지의 세수(稅收)전망과 국민건강보험 적자 규모, 경제상황 등을 살펴본 뒤 추경편성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정부의 현재 시각. 진부총리 등 경제부처 고위당국자들은 또 최근 추경편성문제 등 당정간에 충분히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내용을 여당측이 마구 발표하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당쪽이 계속 추경편성을 밀어붙일 경우 경제부처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 진단▼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左承喜)원장은 “올해 예산을 상반기에 앞당겨 배정키로 했고 국가재정문제에 대한 우려가 큰 현상황에서 경기부양이든, 실업대책이든 간에 추경을 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좌원장은 특히 “지금은 정부여당이 재정을 동원한 경기대책을 쓸 때가 아니라 경쟁력있는 기업의 활동을 제약해온 각종 규제조치를 풀고 투자를 촉진해 퇴출기업에서 생기는 실업자를 흡수할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려대 이필상(李弼商·경영학)교수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점검하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않고 예산을 무작정 늘리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이라며 여당의 조기 추경편성을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적 차원의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교수는 또 “현재 정부여당간에 이견이 있지만 추경편성이 여당의 확고한 생각이라면 재경부 등이 끝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굳이 추경예산을 편성하려면 그동안 공적자금을 숱하게 퍼부었는데도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책임부터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대 김기원(金基元·경제학)교수도 “여당의 추경편성 논의는 한마디로 말해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무언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교수는 “경기가 정 안좋다면 어쩔 수 없이 추경예산을 짜야할 수도 있겠지만 뚜렷한 경제철학도 없고 사실상 구조조정을 포기, 또는 중단한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예산을 늘리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