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갑작스런 수출악화로 경제회복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다. 내수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기업들의 수출증대 노력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감소하는 것은 분명히 경제회복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경쟁력 갖춘 품목 점점 줄어▼
최근의 수출악화는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작년 이맘 때 수출이 지나치게 잘되었기 때문에 최근의 수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 금년 수출이 줄어든 것은 특히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액정표시장치, 철강,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한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경기둔화로 인해서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대미 수출이 많은 나라가 동시에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보통신(IT)산업의 퇴조는 IT 분야의 수출 감소를 초래했다. 마지막 요인은 구조적인 문제로 전반적인 수출경쟁력 하락에 따라 중국에 지속적으로 추월당하는 과정의 하나라는 점이다. 처음 두가지 이유가 수출감소의 단기적 원인이라면 마지막 구조적 문제는 장기적 원인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수출감소와 더불어 또 다른 문제점은 수입이 더 감소하면서 무역흑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입부진은 설비투자의 축소에 따른 자본재와 중간소재의 수입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제조업은 가공조립생산이므로 자본재와 중간소재의 수입감소는 투자위축, 수출감소, 수입감소란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와 성장 잠재력을 하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역흑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의 수출감소가 아니라도 국내기업의 수출경쟁력은 이미 중국에 비해 열위이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한국은 불과 몇 개 품목의 수출에 우리 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5%나 되기 때문에 반도체의 가격변화에 따라 국내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 수출이 부진하면 역시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농수산물을 주로 수출하는 나라를 제외하면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다. 따라서 해외경기의 변화에 대한 국내경제의 부침은 앞으로 보다 심해질 것이다.
미국시장에서의 경쟁력 하락과 더불어 중국시장에서의 수출 여건도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약 100억달러(홍콩 제외)의 흑자를 보고 있다. 일본 대만 미국은 많아야 10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주요 수출품은 일부 전기전자품목 외에 철강, 석유화학 제품으로 중국이 조만간 생산설비를 신증설하려는 품목이다. 따라서 조만간 이들의 수출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산업에서 수출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겠으나 일부를 제외하고 중국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앞서고 있다. 정보통신 관련 수출품 가운데 30% 정도만 중국에 우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중국은 일부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한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부진 일시 현상 아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최근의 수출감소를 미국경기의 위축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미국경기가 회복된다고 해도 우리의 수출경쟁력은 구조적,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 수출악화로 인해 국내경제는 해외경기 변화에 보다 취약하게 된다. 이런 수출부진은 무역사절단 파견과 같은 유치한 대책이나 신축적 환율운용과 금융지원에 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은 전반적인 중화학산업의 기틀을 쌓았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반도체의 수출기반이 쌓였으며 노태우 정권에서는 CDMA의 생산기반이 만들어 졌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는 세계화, 기업구조조정이란 구호는 요란했어도 장차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산업에 대한 비전과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의 수출경쟁력 하락은 분명히 이 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수출부진은 미국경기 위축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봐서는 절대 안된다.
박승록(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