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조금은 답답하고 암담한 마음도 든다. 아디다스 컵도 이제 결승전만을 남겨둔 상황인데… 여전히 K-리그를 휘몰아 칠 회오리 바람은 보이지가 않는다. 리그를 완전히 장악할 최고의 스타도 보이지가 않고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닐 수퍼 울트라급 팀도 보이지가 않는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서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 없으니 팬들이 느끼는 괜한 기대감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늘 그랬듯이 썰렁하게 대회는 끝이 나고… 또한 K-리그는 시작된다.
▶수원과 성남의 강세 예상
일단은 아디다스 컵 4강에 오른 팀들의 전력이 가장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성남과 수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원의 경우 두터운 선수층과 강력한 미드필드가 강점이고 데니스나 고종수 같이 경기장을 휘어 잡으면서 단독으로 상대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걸출한 재주를 가진 선수를 가졌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선수들이 전술적으로 매우 강하게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조직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드필드에서는 반칙을 불사하면서도 상대의 침투와 역습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구멍이 있는 수비진을 보완한다. 또한 프리킥 득점 기회에서 집중력이 높고, 그만큼 득점율도 높다. 중요한 순간에 페널티 킥을 만들어 낼 줄도 안다. 각 포지션 마다 선수들의 팀 공헌도 또한 높은 편이다. 한 마디로 모든 선수들에게 ‘이기기 위한 방법’이 몸에 베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데니스와 산드로에게 의존하기에는 최전방이 좀 비어 보인다. 리그 득점왕에 도전할만한 포워드는 아니라는 말이다. 수비가 한 번에 무너지는 문제도 있지만… 불행히도 나머지 팀들 중에 수원의 이러한 약점을 활용할 수 있는 공격 파워를 가진 팀이 드물기 때문에 특별한 약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한창 물이 오른 고종수와 악동 데니스를 상대하기가 벅차기만 할 것이다.
성남의 경우 선수 구성 면에 있어서는 가장 안정된 (수원을 능가하는) 팀으로 보인다. 우선은 요즘 희귀해진(?) 수준급의 전문 스트라이커를 보유했다는 점이 돋보인다(10개 구단을 통틀어서 국가대표급의 전문 스트라이커를 가진 팀은 전북(김도훈)과 성남 뿐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드필드와 수비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선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어느 한구석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조직력이나 전술적인 면에서도 나무랄 곳이 없다. 다만, 성남으로서는 샤샤가 팀의 핵인 동시에 불안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득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그가 부진할 때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태용, 박남열, 김대의 등 득점력이 좋은 공격수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면 좋은 팀 전력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에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다. 샤샤는 팀 공격력 전체를 이끌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찬스에서 득점을 올리는 경향이 강하며, 몰아칠 때는 해트트릭을 손쉽게 기록하다가도 어떤 때는 아예 경기를 말아 먹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경우 아디다스 컵 결승에 오른 점에서는 위 두팀과 견주어 볼만한 전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득점 루트가 다양하지 못하다. 베스트 11이 흔들림 없이 활약해 준다면 아디다스 컵에서와 같은 결과는 올릴 수 있겠지만, 백업 멤버의 파워가 좀 딸리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부산의 공격은 매우 빠르고 직선적이다. 또한 작년에 비해 선수들 투혼과 자신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 부분이 올 시즌 부산의 가장 큰 플레이 특징이 될 것으로 생각되며, 수비가 어정쩡한 팀들은 적잖이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전체적인 팀 전력에서 수원이나 성남보다 다소 빈 구석이 보이는 점, 그리고 김호곤 감독이 팀을 맡은 첫 시즌이라는 점이 부산을 우승 후보로 거론하기에는 다소 주저하게 만든다.
안양은 최용수를 대신할 스트라이커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작년 우승팀답게 나머지 포지션에는 좋은 선수들을 많이 포진하고 있지만, 득점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특히 최용수는 작년 시즌에 자신이 직접 득점하기 보다는 안양의 전체적인 공격 파워와 다른 선수들의 득점 기회를 넓혀주는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올 시즌 그의 공백이 더 커보인다. 골을 많이 넣는 선수보다 무서운 선수가 팀 득점력을 높여주는 선수이며, 작년의 최용수는 프로에 입단한 이후 그 어느 해 보다도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급 골잡이 기근, 스타 탄생?
김도훈과 샤샤를 제외하고는 특급 골잡이가 없다는 점이 각 팀 감독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시즌 동안 10골 이상을 뽑아 낼 수 있는 선수, 또는 15골 이상을 뽑아내면서 득점왕 경쟁에 뛰어들만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각 팀마다 이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용병도 써보고 신인도 써봤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득점왕 후보로 거론 될만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골잡이들이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동국이나 설기현, 안정환 같은 장래의 득점왕 후보들도 더 이상 K-리거가 아니다.
과거 한국 최고의 골잡이들이 대표팀에 차출되는 바람에 막상 프로 리그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득점왕 경쟁을 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해외로 이적한 선수들의 대부분이 특급 공격수라는 점이다. 즉, 수비력에 비해서 현재의 K-리그는 공격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울러 한국 프로 축구가 지난 2-3년 동안 수비 전술과 선수 개개인의 수비능력에서 상당한 향상을 이루었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또 다른 스타의 탄생을 기대해 볼만 하다. 특히 올해의 신인상을 배출하는 팀, 또는 올해의 용병 농사에 성공하는 팀은 의외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새로운 얼굴이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며, 예년에 비해 그러한 신인들이 더욱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가 흉년 중의 흉년이긴 했지만, 걸출한 신인이나 용병이 출현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시기다. 이쯤 되면 걸출한 용병 공격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울러 올 시즌의 결과에 따라 내년 시즌의 팀 주력선수 구성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신인 선수, 혹은 그 동안 출전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던 선수 중에서 골잡이로서의 재주를 가진 선수가 있다면 그에게 잔뜩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빅스타가 떠난 자리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그리고, 그 공백 기간은 생각처럼 길지가 않다. 따라서 몇몇 팀들은 올 시즌을 주력 선수진의 교체 시기로 알차게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세대 교체로 인한 전력 누수 위험이 적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기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몇몇 구단에서는 시즌 중에도 꾸준히 새로운 용병을 영입하려 할 것이다. 여느 시즌에 비해 걸출한 용병이 가져오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팀에 따라서는 그 효과가 짭짤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예전에 비해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상당히 향상되었으며, 저가에 쓸만한 선수를 기대하기도 과거에 비해 여의치가 않다. 과거에 비해 선수들의 몸값이 전체적으로 높아진 반면 K-리그는 그리 후하지 못한 편이다. 더구나 바로 옆의 중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더 큰 돈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프로 구단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우리 프로 리그는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용병 수급 시장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고춧가루 부대
좀 더 세련되게 말해서 ‘다크 호스’가 되겠다. 즉, 우승권의 전력은 아니지만 리그 막판까지 선두권 팀들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마지막까지 존재의 이유를 알리는 팀들을 말한다. 올 시즌은 유난히 이런 팀들의 활약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상하위 팀 간의 전력 편차가 줄었으며 특별히 타의 추종을 불허 할만한 강자도 없다. 특히 걸출한 팀 컬러를 보유한 팀들이 고춧가루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팀이 전북과 포항이다. 전북은 김도훈을 정점으로 한 최전방의 위력이 나머지 모든 팀들에게 위협의 대상이다. 김도훈이나 박성배 하나만 가져도 원이 없을만한 팀들이 대부분이건만, 전북은 둘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에 양현정과 변재섭이 지원을 나서는 전북의 공격력은 타 팀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빠르기와 세기, 그리고 득점력을 모두 갖춘 공격진이다. 주전 멤버들의 이탈이 없고 후보 선수들이 고비에서 한 건씩 거들어 준다면, 전북은 다크 호스가 아닌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포항은 확실한 스트라이커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공격 전반에 굵직한 선수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어느 팀 보다 신인 수확이 알찬 팀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어느 팀을 상대하더라도 경기력에서 꿀릴 부분은 없다는 말이다. 김병지를 중심으로 한 짠물 수비에 비하여 타 팀들의 스트라이커들이 예년에 비해 약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포항을 상대하는 팀들로서는 어려운 시합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박태하, 고정운, 하석주, 자심, 코난 등의 선수가 각 공격 포지션 전반에 걸쳐 골고루 득점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주목 할만하다.
만년 하위 대전의 약진도 볼만 하다. 여전히 팀 전력상 상위권으로 분류되기는 힘들지만 꾸준하게 팀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비록 노장이긴 하지만 새롭게 아킨슨을 보강한 점은 팀 공격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은중과 이관우의 공격력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만년 하위라는 이미지를 선수들 스스로가 점점 벗어 던지고 있다는 점은 2001 아디다스 컵 대회를 통해 대전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대전의 경우 리그 전 경기에 매달리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에는 대전의 노림수에 걸린 팀이 낭패를 볼 가능성도 크다. 아울러 김은중의 성장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또래의 이동국이나 설기현에 비해 대표팀과의 인연은 적었지만 프로 무대에서 착실하게 성장을 거듭해 온 선수이다. 이제 그에게서도 그만의 스타일, 그만의 카리스마가 서서히 느껴지고 있다.
▶2001 K-리그, 과연 재미 없을까?
왜 우리 K-리그는 재미가 없을까? 골이 많이 터지지 않아서? 너무 거칠어서? 수준이 낮아서? 아니면,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서?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K-리그가 재미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유럽의 빅 리그라고 해서 평균 득점이 우리보다 현저히 높은 것도 아니고 팀 마다 스타 플레이어가 득실 거리지도 않는다. 우리에 비해 화려하고 멋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경기가 그토록 드라마틱 하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의 팀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팀을 가지지 않는 이상, 축구는 그저 엔터테인먼트나 쇼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 빅 리그의 팀들이 보여주는 쇼는 K-리그가 보여주는 쇼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팀은 결코 경기장에서 쇼를 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해 진지하게 최선을 다 할 뿐이며, 그것이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다. 한일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쇼를 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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