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정책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강봉균(康奉均) 원장이 세출 증가를 억제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비판한 것을 정부 여당은 새겨들어야 한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가 빨라져 초기 단계에서 이를 감축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됐는데도 정부 여당은 이와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 민주당은 세계 잉여금 등으로 추경예산 5조원을 편성해 지방교부금 정산, 건강보험 재정적자 지원, 실업대책 예산으로 쓰겠다는 생각이다. 당초 올 예산을 짜면서 예산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기 때문에 팽창예산이 아니라고 주장해놓고 불과 다섯달 만에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재정 건전화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국제비교는 금액이 명확히 확정된 것만을 포함시키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따른 것이다. 작년에는 전체예산의 8%를 공적자금과 국채이자를 갚는 데 썼고 134조7000억원이 투입된 공적자금도 미회수분은 국가부채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이대로 놓아두면 국가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경기가 나빠져 한국 경제에 심각한 어려움이 밀려올 때 정부가 유효 적절한 재정수단을 쓰지 않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할 만큼 긴급한 사유에 해당되는지 의문이다.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는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의사 약사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무리하게 의료수가를 올려주고 원외 처방료를 인상하면서 생긴 것이다. 건강보험의 지출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무리한 수가 인상분을 재조정하고 허위 부당청구에 대한 심사 기능을 강화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은 자칫 국가재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실업대책 예산도 이미 본예산에 반영된 것으로, 지나치면 선심성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도 저부담 고급여 구조를 시정하지 않으면 재정이 고갈돼 국가재정에 부담으로 남게 된다.
KDI의 충고대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또 다른 경제위기 등 외생적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정수지를 점차 개선하면서 국가부채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