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멜로 영화가 휩쓸고 지나간 충무로에 뒷골목 깡패 영화들이 속속 자리를 메우고 있다.
최근 제작 중이거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국내 영화의 주인공들은 태반이 건달, 깡패, `양아치' 아니면 `조폭'(조직폭력배)이다.
현재 상영 중인「친구」와「파이란」을 필두로 기획, 제작 중인 작품만 해도「조폭마누라」「신라의 달밤」등 줄잡아 10여편이 넘는다.
한국 영화의 가장 빈번한 소재가 `깡패 영화'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한꺼번에 비슷한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과히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조폭마누라」는 `조폭'의 보스인 아내(신은경)가 우여곡절 끝에 `순둥이' 남편(이범수)과 결혼하게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결혼 생활을 코믹하게 담은 작품.
터프한 여자 보스 역을 맡은 신은경이 최근 촬영 도중 조폭들과 격투신을 찍다전치 3주의 부상을 입는 등 온 몸 연기를 펼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사 ㈜좋은영화는 두 편을 준비 중이다. 김상진 감독의「신라의 달밤」과 류승완 감독의 두번째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가 그 것.
경주에서 촬영이 한창인「신라…」는 두 고교 동창생이 학창 시절과는 정반대로 건달과 선생이 돼 10년 만에 해후한 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는 건달 세계의 두 여자가 투견장의 돈의 행방을 좇는 과정을 그린 액션 느와르로, 전도연과 이혜영이 일찌감치 캐스팅돼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영화사 씨네월드의「달마야 놀자」(박철관 감독)는 사고를 친 뒤 깊은 산속 암자로 숨어든 `조폭' 일당과 스님의 한발 승부를 그린 휴먼 코미디로, 올 7월께 크랭크 인한다.
이밖에 일본의 '야쿠자'를 소재로 한 한일합작영화「미션 바라바」, `칠수와 만수' `비언소' 등을 유명한 연극연출가 이상우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조폭들의 MT」, 장진 감독의「킬러들의 수다」, 조민호 감독의「정글쥬스」등이 목록에 올랐다.
이처럼 `깡패 영화'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기획, 제작되고 있는 것에 대해 영화전문가들은 사회 현상과 연관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정치혼란과 경제침체 등 국내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같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호러 영화와 깡패 영화가 많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불만이 괴물의 이미지나 폭력으로 반영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기획이 다양하지 못한 `빈약한' 국내 영화계의 현실과 쉽게 인기에 편승하려는 안일한 기획 태도 탓이라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쉬리」가 흥행에 성공하자 블록버스터 바람이 일었던 것처럼 「친구」의 흥행에 힘입어 비슷한 `아류작'들이 속속 기획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연합뉴스=조재영 기자]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