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분야에 깊게 빠져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마니아'라고 부른다. 한때 이들을 보편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소집단으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보편성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은 오히려 마니아적인 삶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오디오 기기에 심취해 보통사람들은 거의 구별하지 못하는 섬세한 '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 '오디오 마니아'들도 대표적인 마니아 집단중 하나이다. 흔히 오디오 마니아라고 하면 고가의 오디오 기기를 마치 옷 갈아입듯 수시로 바꿔가면서 음악을 즐기는 '호사가'들로 인식한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향유할 수 있는 '자본가의 도락'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오디오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윤광준씨가 쓴 에세이집 (효형출판, 312면)은 그런 세속적인 평가에 맞서 '오디오파일(audiophile)'로 살아온 삶을 열정에 찬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오디오파일'은 일본식 표현인 '오디오 마니아' 대신 오디오 애호가를 부르는 명칭.
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저자가 오디오에 입문하는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사운드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과정을 담았고, 2장에서는 '오디오파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해 개괄적인 오디오의 역사에서 오디오를 이루는 기기들을 각 파트별로 소개하고 있다. 3장에서는 흔히 '하이엔드 오디오'로 불리는 오디오의 명기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5∼60년대 최고의 앰프 '매킨토시'를 비롯해 '마크 레빈슨' '패토스' '탄노이' '골드문트' 등 명품들이 탄생하기까지 장인들이 겪었던 한계와 고민, 창작의 희열이 생생하게 수록돼 있다. 그리고 부록에서는 주요 기기의 브랜드별 연표와 '오디오 파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오디오기기간의 조합에 대한 사례, 중고 오디오 정보 등을 담고 있다.
물론 그동안 '오디오파일'이 쓴 이런 류의 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순례자의 성지순례를 기록하듯 자신의 오디오 편력기를 소개한 책도 있고, '오디오파일' 들을 위한 비장의 테크닉을 기록한 해설서나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도 꽤 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난해한 전문용어와 암호같은 각종 수치, 생경한 오디오 브랜드명으로 가득 차 일반인들이 다가설 여지를 막아왔다. 차례만 언뜻 보면 윤광중씨의 책도 기존의 '오디오 파일' 책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은 '오디오파일'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그 열정과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이야기의 높이를 조절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오디오에 대한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이 아니다. '완벽한 소리'를 찾기 위해 오디오를 외골수로 사랑해온 한 중년남자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삶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만큼 남들이 넘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와 있다'며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에 찬 어조로 이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난치병'에 한번 걸려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유혹은 오디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하고 매혹적이다.
또 저자는 '오디오파일'의 핵심으로 기계가 아닌 인간을 강조하고 있다. '오디오파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천만원대의 하이엔드 오디오가 아니라 하나의 음을 찾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매달리는 끊임없는 탐구와 집념, 창의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인 김갑수씨를 비롯해 비슷한 열병에 걸려있는 '오디오파일'들을 소개하면서 시스템의 전문적인 설명보다는 그들이 '자신만의 소리'를 찾는 과정을 소개하는데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윤광중씨가 300여 페이지에 걸친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이다. "미쳐있는 행복은 미친 사람만이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미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고.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