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밀입국하려다 붙잡혀 망명을 신청한 30대 여성 탈북자 김순희씨의 사연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금도 해외를 떠돌고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의 위험하고 고단한 삶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7년 전인 1994년 2월 두 살 난 아들을 안고 압록강을 건넜다. 도강(渡江) 중 국경경비대에 발각되는 바람에 동행하던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숨지는 참극도 겪었다. 그 후 6년간 김씨는 중국 옌볜(延邊)에서 북한측 요원의 눈을 피해 숨어살며 ‘자유의 땅’ 미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노렸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동포에게 아들을 ‘볼모’로 잡히고 빌린 돈으로 위조여권을 구입해 홍콩 멕시코 등지를 거쳐 미국에 밀입국하다 연방이민국에 검거됐다.
미국 법은 망명 신청자를 출신국에 돌려보낼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망명을 허용하게 돼 있다. 김씨의 경우 북한 국적임을 입증할 아무런 자료도 없어 망명 허가를 받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김씨가 겪었던 온갖 고초를 감안해 미국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망명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
90년대 후반에 대량으로 발생했던 탈북자 문제는 지금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해외를 떠도는 탈북자 수를 정부는 1만∼3만명, 민간단체는 30만명까지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현지국과의 외교 마찰 등을 우려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민간단체의 탈북자 지원활동도 소강상태다.
근본적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열악한 인권 상황이 탈북자를 양산해온 주된 원인인 만큼 북한당국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선 안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는 어렵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해외체류 탈북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떳떳하지 않다. 남북대화의 큰 줄기를 잡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동포의 고통에 발벗고 나서지 못한 것은 누가 뭐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정부도 이젠 대북 협상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당당하게 제기하고 탈북자 문제의 해법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순희씨의 경우와 같은 사건이 재발할 개연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내부의 사정이라며 언제까지나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