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상황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각 정파는 차기 대선에 대비한 내부 정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당 내 당(黨內黨)’ 으로 불리는 국가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은 11일 2단계 전당대회론 과 당권 대권 분리론 을 거론했다. 자민련 관계자들은 요즘 부쩍 ‘JP 차기론’ 을 들고 나오고 있다.
당에 따라, 정파에 따라 그 배경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런 움직임들은 1차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당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민주당의 2단계 전당대회론=당헌상 총재 임기(2년)가 만료되는 내년 1월에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총재를 뽑고 대선후보는 지방선거 이후인 7,8월쯤 선출하자는 2단계 전당대회론은 여권 내에서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여권의 예비주자들 사이에서도 계속 논란이 돼 왔다.
그러나 이번엔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 전최고위원이 직접 이를 언급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여권 인사들이 받아들이는 무게는 다르다. 그의 언급에 ‘김심(金心·김대중 대통령의 의중)’ 이 실려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곧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에 쐐기를 박는 한편, 동시에 동교동계가 대선 관리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당을 장악하겠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동교동계 핵심인사들이 요즘 “한나라당이 이회창(李會昌) 총재 대신 영남후보를 내세우는 상황만 아니라면 (내년 대선에) 승산이 있다” 고 ‘공언’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동교동계가 단순히 ‘2선 지원’ 에 그치지 않고 정권 재창출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선이 가까워질 수록 유동성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정치권의 여러 가지 변화를 상정해 내년 1월까지는 ‘김대중(金大中) 총재 체제’ 를 유지하고, 그 후에도 대선후보 선출 때까지는 김 대통령이 영향력을 잃지 않도록 하려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자민련의 ‘JP 차기론’ =민주당 내에도 JP 차기론자들이 없지 않다. 범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한 재선의원은 심지어 “DJP간에는 JP가 직접 후보로 나서는 경우에 대해서도 뭔가 의견교환이 있었을 것” 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하지만 요즘 자민련 관계자들의 ‘JP 차기론’ 제기는 보다 조직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은 11일 직접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 명예총재의 순서가 왔다고 생각한다” 고 공언했고, 원외 지구당위원장 40여명은 10일 민주당에 내각제합의 이행을 위한 일정 제시를 요구하면서 “내각제가 안되면 다음 차례는 JP” 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민주당 압작용 해석도”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주당의 대선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에 JP차기론을 확산시키면서 당을 대선체제로 전환하고, 공동여당 내 대선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신당론=무소속의 정몽준(鄭夢準)의원이 제기한 신당론이 정치권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도 신당 창당이 차기대선 구도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13일에도 “지금 당장 신당을 창당하기는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새 정당 출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여야관계는 생산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욕구가 분출하는 방향에 따라서는 새 정당의 출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당론 아직은 정치권의 여러 가지 작은 흐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 의원 자신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라는 전제 하에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성향의 여야 중진의원들과 종교계 학계 인사들이 중심이 돼 17일 창립대회를 갖는 ‘화해전진포럼’ 과 386세대 중심의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 등 여야의 주류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여러 갈래의 ‘지류(支流)’ 들이 어떤 형태로든 통합 움직임을 보일 경우 대선 앞둔 정치권에 변화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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