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정 엄마께 전화가 왔습니다.
오이소박이를 만들어 놨으니 가져다 먹으라구요. 안그래도 완전히 맛이 간 김장김치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새로 담근 아삭아삭한 오이소박이라니, 냉큼 달려가서 한 그릇 담아왔지요.
하지만 절 김치 하나 못 만들어서 매번 친정과 시댁에 신세를 지는 얌체 아줌마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저도 오이소박이 하나는 정말 맛있게 만든다구요. 요즘은 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엄마께 신세를 진 것 뿐이죠.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주부들에게 김치는 너무너무 큰 난관이죠?
전,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시어머님 김치 담그시는 걸 도와드리다가 기가 질려버렸답니다. 작고 아담해보이는 무, 배추가 소금물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얼마나 무거운지...게다가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때문에 손도 따갑고, 젓갈 냄새 지독하고...하루 온종일 구부린 허리를 펼 수가 없으니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은 없더라구요.
그날 이후 한국 남자들, 김치없이 밥 못 먹는다는 걸 무슨 자랑인줄 알고 큰소리 뻥뻥 칠 때마다 짜증납니다. 김치 만들기가 얼마나 중노동인지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배추랑 무가 얼마나 무거운지, 김치 버무리고 나면 손이 얼마나 맵고 따가운 줄이나 아는지...일본 사람들도 깜빡 죽는다는 우리의 김치 만들기, 여자들에겐 죽음입니다요...
그래서 아예 김치만들기는 포기하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얻어먹거나 농협같은 데 가서 조금씩 사먹거나 하며 연명을 해왔죠. 그런데 또 김치에 있어서만은 한 까다로움 하는 우리 신랑, 사다먹는 김치는 맛이 없다는 거예요. 제가 먹어봐도 시어머님이 싸주시는 담백하고 싸~한 김치에 비해 사다먹는 김치는 양념이 너무 진하고 강하더라구요. 아무리 누구누구 손, 누구누구네 집 하는 요란한 이름의 김치도 어머니들이 직접 담궈주신 맛에는 비할 바가 아닌 거죠, 뭐.
그렇게 김치와의 전쟁을 벌이던 어느 날. 날씨는 덥고, 입맛은 없고, 남편은 김치 때문에 징징거리고... 그런 꿀꿀한 기분으로 요리책을 팔랑팔랑 넘겨보다가 오이소박이 만드는 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김치! 하면 일단 만들기도 복잡하고, 재료도 자잘하게 많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세수대야보다 정확히 2배는 더 큰 양푼이 가득 찰 정도로 양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깨끗이 없애주는 간단명료한 요리법이었습니다.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오이와 제가 좋아하는 부추, 실파와 양파에 김치 양념만 있으면 되니까요. 또 오이소박이는 배추 김치나 총각김치처럼 한번에 이따만큼 만들어두고 먹는 김치가 아니라서 부담이 없더라구요. 망치더라도 재료가 아까워서 눈물날 일은 없으니까요. 또 오이는 배추나 무처럼 덩어리가 크지 않아서 손이 둔한 초보 주부도 간단히 손봐서 만들 수가 있구요.
오늘 소개할 오이소박이의 포인트는 오이에 열십자 칼집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오이소를 넣어 준다는 거예요. 오이를 끓는 물에 데치다니, 이상하지요? 그렇게 하면 오이소박이가 물러지지 않고 늘 아삭아삭하대요. "그럴 리가...오이를 끓이다니, 먹을 것 가지고 장난하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정말이예요. 그냥 끓는 물에 슬쩍 담갔다 꺼내줬는데도 다 먹을 때까지 아삭아삭한 맛을 잃지 않더라구요.
저는 작년 여름에 오이소박이를 담가서 친정과 시댁에 한통씩 드렸어요. 매번 김치를 공수받는 입장에서 일종의 뇌물이랄까? "앞으로도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주세요!"하는 뜻에서요. 올해도 오이를 좀 넉넉히 사다가 정성껏 만들어서 한번 돌리려구요. "김장김치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는 의미에서요.
***아삭아삭 오이소박이 만드는 법***
재 료 : 오이 10개, 굵은 소금, 부추 250g, 실파 100g, 양파 100g, 멸치젓국 4큰술, 다진마늘 1큰술, 다진 생각 1작은술, 고춧가루 5큰술, 소금 1작은술, 설탕, 깨소금 1큰술
만들기 : 1. 굵은 소금에 오이를 굴려 소금간이 배게 한다
2. 소금에 굴린 오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윗면에 열십자로 칼집을 내 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