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끝은 사랑이고 사랑의 끝은 현실이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KBS2 주말드라마 를 보면서 이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우리 인간 본능은 크게 공격성(남보다 앞서려는 마음)과 성욕(사랑)으로 나뉜다.
인간은 이 두 본능 중 한가지만 잘 성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현실에의 성공’을 추구하든지(남자·외향성), 아니면 ‘사랑에의 성공’을 추구한다(여자·내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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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 표민수 PD가 말하는
그러나 현실에서의 성공이 극한에 이르면 심리 에너지는 더 이상 현실에 머물지 않고 반대 본능인 사랑으로 눈을 돌린다. 모든 에너지는 최대한 자신을 태우려하지, 태운 것을 또 태울 정도로 비효율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사람(LC전자 사장 윤성재·이경영)이 무모한 사랑에 빠진다.
특히 40대는 인생의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들어가는 전환기로, 이 시기에는 과거의 현실적인 가치관이 변화할 것을 요구받는다. 의 작가는 이때 겪는 열병을 흥미롭게 발견해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은 새로운 도전에 잘 적응할 것인가? 인생의 전반기의 과제인 현실적 성공은 잘 이루었는데 후반기의 과제인 마음, 사랑, 영혼, 자기 실현에도 그는 성공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 봐서는 잘 될 것 같지 않다. 건강하고 떳떳하게 사랑을 쟁취하기에는 윤성재나 그 상대인 이신우(23세·이요원)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윤성재는 나이가 들었다는 자책감에, 이신우는 아버지 콤플렉스에 깊이 사로 잡혀있다. 사랑이란 겉 껍질을 떠나 성숙으로, 그리고 자유로, 창조로 당당히 나아가야 하는데, 그들은 콤플렉스와 한풀이에 사로잡혀 있어 우물쭈물한다.
주저하는 젊은 신우에게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자신없게 말하는 윤성재나, 윤성재의 딸 주희의 몇마디에 통곡하는 신우의 모습에서 건강한 사랑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랑의 시작을 위해 설정한 이런 조건들을 ‘푸른 안개’ 작가가 앞으로 창조적으로 극복할지, 아니면 그냥 진부하게 놔버릴지 주목된다. 몰래 사랑하다 들키자, 이 떡 저 떡 다 못 놓고 우유부단해 하다가 주변에서 알아서 해결해주면 못이기는 체 돌아오는 정도일지 말이다.
한편 이 드라마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20대 여성과 40대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물질주의적으로 거세게 흘러가는 우리의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가정 주부들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리겠지만, 어떤 40대 남자는 “전화 한 통화면 20대 초반 여대생들 얼마든지 데리고 여행갈 수 있어”라며 비웃는다. 현실을 잘 모르는 주부와 현실에 달통한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많은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미래를, 고상한 가치를 잘 믿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고상하고 우아하게 가치를 지켰다고 별로 덕되는 꼴을 못 봤기 때문이다. 차라리 젊고 이쁠 때 한껏 비싸게 ‘파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이겠지만 룸살롱에는 여대생들이 득시글하고, 엄한 단속에도 원조교제는 끝날 줄 모른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 사랑에 눈 돌리는 중년남성들의 축적된 에너지(돈)를 현대의 젊음은 주저하지 않고 빨아먹는 것이다. 현대는 돈이 최고니까. 그래서 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신조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이 들면서 아름답고 영원한 푸른 사랑을 꿈꾸는 중년들.
그러나 그들이 그 꿈을 진실 가운데 찾지 않는 한 그들의 푸른 꿈은 계속 안개 속을 헤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