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는 최근 경사를 맞았다.
4월 27일 룩셈부르크 콩쿠르 2인무 부문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엄재용 김세연이 금상 수상자 없는 은상을 차지한 것. 하지만 한국 발레의 ‘기적’으로 불릴 만한 사건의 남자 주역인 엄재용(22)의 표정은 예상 밖으로 어두웠다.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콩쿠르여서 당연히 병역 혜택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국내 무용대회는 병역 혜택을 받는 데 왜 국제 콩쿠르는 안되죠?. 음악은 국내는 물론 국제 대회에서 입상해 혜택을 받은 친구들이 많은데….”
음악의 경우 정부가 인정하는 국제 대회에 입상하면 현역 대신 공익근무 요원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으나 무용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요즘 박노항 원사의 병역 비리로 세상이 떠들썩한 이런 시기에, 군대 가기 싫다는 한 젊은이의 ‘철없는’ 주장일까?
무용 가운데 발레는 특히 부단한 연습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장르로 유명하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은 아예 40세를 정년으로 못박고 있다. 국내외 유명 무용수들은 30세를 넘어서면 안무가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비교적 체력 소모가 적은 현대무용으로 장르를 바꾸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공연계에서는 “무용수, 그 중에서도 발레하는 친구들이 가장 불쌍하다”는 말이 나온다. 40, 50대에도 훌륭한 예술적 기량을 발휘하는 음악 미술과 달리 그들의 ‘예술 인생’은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남성무용수들에게 군 입대는 그나마 짧은 무용가 수명에 큰 장애물이다.
병무청의 입장은 확고하다. 무용 분야의 특수성을 인정해도, 병역 자원 부족으로 공익근무요원 대상을 가급적 줄여나가는 것이 기본 방침이며 무용 분야를 확대할 경우 다른 분야의 잇따른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재용의 주장은 특혜를 원하는 게 아니라 음악 분야와 형평성을 맞춰달라는 것이다. 현재 예술분야에서 공익근무요원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음악 미술 무용 등 국내 13개 대회로 규정돼 있다. 또 국제대회에서는 음악이 100여개 대회 입상자에게 병역 혜택이 있는 반면 무용은 없다.
국내 대회보다 훨씬 입상이 어려운 국제대회 수상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 일차적으로는 이같은 모순을 수수방관해온 무용협회의 무능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쾌거를 이룩한 엄재용 같은 남성무용수의 허탈함과 상실감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막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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