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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메이크업에 성역 없죠"

입력 | 2001-05-14 18:54:00


‘여자보다 ‘화장발’에 더 강한 남자들.’

메이크업의 세계에 도전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분장메이크업예술인협회에는 최근 1년새 남자 회원수가 부쩍 늘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어쩌다 한두 명씩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던 남성들이 최근에는 10여명씩 몰려들고 있는 것. 이들은 여성들 못지 않은 섬세함에 남성들이 가진 ‘경쟁력’을 가미, 메이크업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메이크업 남자 아티스트 김상윤씨

13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 ‘바비 브라운’ 매장. 이 브랜드 전속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경력 3년차인 김상윤씨(29)가 다정다감한 말투와 능숙한 솜씨로 화장붓을 움직였다.

“이렇게 눈두덩은 환하게 하고 핑크색 볼 터치를 하면 귀여워 보이죠.”

김씨는 평소 화장에 대한 ‘필(feel)’을 얻기 위해 화장품을 직접 얼굴에 ‘찍고 바르는’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랄 경우 역시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여자 친구와 어머니 얼굴을 캔버스 삼아 각종 테스트를 한다.

본인도 고객들을 위한 기본 서비스이자 에티켓 차원에서 백화점 매장에서 일할 때는 가벼운 화장을 한다.

“제품들을 직접 써 봐야 여성들 눈높이를 맞출 수 있잖아요.”

첫 직업이었던 광고사진작가 일을 하면서 메이크업 시장의 잠재력을 느꼈고 미술에도 소질이 있던 터라 과감히 진로를 틀었다. 메이크업 전문학원에서 1년 정도 실력을 쌓고 진출한 김씨는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경쟁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고객들이 남자들이 더 꼼꼼하게 화장해 준다고 좋아하시죠. 희소성이 있어선지 보다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주거든요.”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

박현숙씨(27·회사원·서울 마포구 성수동)는 “고객 입장에서는 실력과 정성이 성별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명희씨(26·회사원·경기 의정부시 호원동)처럼 “조금은 쑥스럽고 꺼려진다. 아무래도 여자 피부는 여자가 잘 알지 않겠느냐”며 아직은 보수적인 고객들도 없지 않다.

20대 초반 여성 고객으로부터 스토커에 가까운 구애를 받아본 적도 있지만 ‘고객들과는 절대로 데이트 안한다’는 것이 김씨의 철칙.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성격까지 여성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그는 “섬세함과 천성적인 심미안(審美眼), 여성에 대한 이해심을 갖춘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한 달에 한번씩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모임에 나가 정보도 교환하고 ‘소수’로서의 애환도 나눈다는 김씨는 “앞으로 내 이름 석자를 내건 메이크업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메이크업 시장에서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엔 일반 남성들도 취업용 사진을 찍을 때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화장을 받으러 오는 것이 낯설지 않다.

전국적으로 70여개에 달하는 대학내 메이크업 관련 학과에서도 전공 남학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강원 속초시 동우대 피부미용과의 경우, 재학생 400명 중 남학생 수가 30명으로 99년 신설 당시보다 그 비율이 두 배나 늘어났다.

국내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 1호로 꼽히는 왕석구씨(46·㈜태평양 미용연구팀)는 “남성들은 전체적인 메이크업 분위기를 설정할 때나 큰 쇼 등을 계획할 때 과감한 판단력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피부 컨설턴트 최정환씨-"남자라 오히려 더 편하대요"

화장품 업체 ‘클리니크’의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에서 여성 고객들을 대상으로 피부 상담을 해주고 있는 전문 ‘피부 컨설턴트’ 최정환씨(25).

김천과학대 피부미용과를 졸업한 뒤 피부관리 아카데미를 수료하는 등 한 우물을 판 결과 이 분야에서 여성 전문가들 못지 않은 ‘입지’를 굳혔다.

피부 컨설턴트란 고객의 피부타입과 취향에 맞게 제품 선택과 판매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전문가.

클리니크에는 현재 12명의 남성 컨설턴트가 활동중이며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각 매장에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할 예정이다.

“완벽한 메이크업을 하고 매장에 서 있는 여성 컨설턴트들에게는 왠지 모를 경쟁심리가 생기는가 봅니다. 남성이라 오히려 맘이 편하다는 고객이 많죠.”

6개월간 일하면서 말씨나 성격이 여성들 못지 않게 상냥하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이 직업병이라면 직업병.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피부 컨설턴트 오정곤씨(27)도 “나를 보고 찾아오는 고정고객이 늘어나면서 일에 대한 보람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男분장사 보편화-패션쇼·여배우 화장등 활약

해외에서는 이미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1급 아티스트들 가운데에도 남성이 많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수석 분장사와 ‘크리스찬 디오르’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베트남 출신 티엔이 대표적 사례.

티엔은 화장품 광고 이미지 제작, 색조 개발에까지 진출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 ㈜태평양 ‘라네즈’ 모델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스콧 앤드루도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컨설턴트 겸 광고 메이크업 책임자로 잔뼈가 굵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는 파리와 뉴욕 컬렉션 등 유명 패션쇼와 카메론 디아즈, 멕 라이언 등 유명 여배우들의 화장도 맡고 있다.

남성 일급 아티스트들은 ‘단점을 감추기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을 더욱 드러내는 화장’과 ‘자신의 나이와 얼굴형에 맞는 자연스러운 화장’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