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씨가 15일 서울 응봉암벽공원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노랑머리 여자 선수가 이따금 ‘앗’이란 기합을 넣으며 90도가 넘는 인공암벽을 탄다. 때로는 손가락 하나로 몸을 지탱하고 이마저 힘들면 이상스럽게 몸을 꼬아 중심을 잡는다.
지난 13일 거제시 인공암벽에서 열린 전국 등반경기(스포츠클라이밍)선수권대회 여자일반부 난이도경기.
경기가 끝난 뒤 박수갈채를 받고 돌아서서 ‘특기’인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우승인사를 한 선수는 다름아닌 고미영씨(34).
고씨는 이번대회 우승으로 7연속 전국대회를 제패했다.아시안컵을 지난해까지 4년연속 차지했고 지난해 5월에는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최고난이도인 5.14그레이드 암벽을 등반했다. 현재 월드랭킹 6위.
전국대회 우승 이틀 뒤인 15일 그를 서울 응봉암벽공원에서 다시 만났다. 스포츠클라이밍 안내 동영상을 찍는단다.
고미영씨는 웬만한 남자 육체미선수보다 근육이 잘 발달된데다가 더 매끈하다.
비결을 물어봤다. “턱걸이는 그만하라고 할 때 까지 할 수 있고, 윗몸일으키기는 하루에 600개씩 해요, 그래야 암벽을 탈 수 있어요.”
키 1m60에 체중이 73㎏이던 그는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이래 48∼49㎏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평범한 공무원이던 그가 암벽등반에 빠지게 된 것은 22세 때인 89년 6월25일. 한마디로 운명적이었다.고씨는 이날 북한산 백운대에 갔다가 “위문에서 두갈래로 길이 갈라지는데 백운대쪽에 사람들이 붐벼서 무작정 반대쪽을 택한게 그만 암벽등반에 빠져들게 됐다”고.
그가 그날 난생 처음 맞닥들인 큰 바위가 바로 만경대 암능. 여기서 그는 또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당시 암벽등반 10년차이던 김병구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반을 마친 것.
이렇게 만난 김병구씨와는 92년에 결혼에 골인했다. 93년 공식대회 출전 첫해에 깜짝 우승을 하며 나타난 이래 최고수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는 남편의 공헌이 절대적이란다.
97년엔 12년 동안 정들었던 공무원생활을 접고 전업삼아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벌써 30대 중반인데 2세 계획은?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어요, 일차목표는 세계제패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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