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발행되는 아시아위크지가 지난해에 이어 11일자 최근호에서 아시아 디지털경제를 이끌 25인의 젊은 리더중 한명으로 선정. 4월 세계 양대 정보기술 전문사이트의 하나로 꼽히는 지디넷아시아가 ‘아시아의 변화를 이끄는 25인’으로 이건희 삼성회장과 함께 거론. 지난해말 세계경제포럼이 뽑은 ‘미래의 세계 지도자 100인’중 한명으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가. 게다가 14일엔 KBS 앵커우먼 황현정과의 결혼발표까지!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李在雄·33)사장에 대한 수식어는 이렇게 화려하다. 그가 95년 세운 이 회사는 세계에서 다섯번째이자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자리잡았다. 어떤 점이 그를 3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 인물’의 반열에 올려놓았을까.》
16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회색 반팔 폴로티에 자주색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니 왠 쫄바지?”하고 기자가 놀란 얼굴을 했더니 “입을 옷이 없어서…”하며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빨랫감을 경기 분당의 부모님댁에 갖다놓고 세탁한 옷을 가져와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아시아위크지는 이 사장이 20달러 짜리 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묘사했지만 이 날은 그마저 차고 있지 않았다. 주식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그는 1000억원대의 부자가 아닌가.
예쁜 아나운서와의 결혼에 대해 먼저 묻고 싶었지만 이 회사 홍보담당자가 사전에 “제발 사생활은 묻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온 터였다. 사생활 노출을 싫어한다는 설명. 기자는 ‘닭살 돋는 연애담’(황현정의 표현)에는 관심없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아시아의 디지털 리더로 꼽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거야 뽑은 쪽에서 대답할 일이지만…”하면서도 그는 두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겠다고 했다.
“아시아에서 경제계 리더는 대체로 재벌이나 부의 세습에 의해 나타나는데 비해 우리는 맨손과 젊은 도전정신으로 출발해 새로운 디지털문화를 이끄는 인터넷기업을 일궈냈다는 점이죠. 저는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이어주는 정말 따뜻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 측면은 우리나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인터넷강국으로 주목받은 덕이죠.”
그는 말이 무척 빨랐다. 성격도 급하냐고 물었더니 “생각이 앞서가는 건 있다. 어릴 때는 머릿 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걸 어떻게 입 하나로 빨리 꺼내나 했다”며 웃었다. 대답할 때는 “두가지로” 혹은 “세가지로”하며 미리 정리해둔 것처럼 꺼내놓는 특징이 있었다.
“디지털경제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두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벤처기업으로서 창조적이고 도전적이고 다이내믹한 문화를 일구는 점, 또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또다른 세계를 만드는 측면이에요. 커뮤니티, 전자상거래 등 지금까지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야죠.”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음’이 이끈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를 들 때는 ‘미국 야후를 보십시오’하면 됐는데 야후가 휘청하고 있으니 이제는, 최소한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가장 주목받게 됐어요. ‘다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그들의 모델이 되니까 책임이 막중해진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갈거냐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고민만 하기에는 절박한 시점이 아니냐고 따져봤다. 최근들어 합병설,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루머까지 나올 만큼 ‘다음’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사장은 더 빠른 말투로 대답했다.
“회사 규모나 성장이나 이익면에서 한계상황이라는 지표를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어요. 외국업체들이 위기를 겪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럴 거라고 하는 모양인데 ‘다음’은 계속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죠. 언젠가 한계가 올 것이라는데는 동의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단계가 전혀 아니예요.”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인터넷과 ‘다음’에 대해 말할 때는 단호했다. 가까운데서 이사장을 보아온 지인들과 업계에서는 그가 ‘일에 관한 한 불도저’라고 평하고 있다.
이 사장은 ‘다음’이 이만큼 성장한 요인으로 운을 꼽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 남들보다 앞서 인터넷의 가능성을 보고 95년 회사를 차린 것이나, 97년 국내최초로 이메일 주소를 무료로 나눠줘 인터넷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린 것이나, 몇달만 늦었어도 ‘거품 폭격’을 맞았을 법했으나 99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해 ‘황제주’로 등극한 것 등등은 운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고 겸손해한다.
구멍가게 하나를 꾸리는데도 남다른 근면과 성실이 필요하거늘 세계적 인터넷기업을 일구는데 어찌 운만 있었으랴. 그러지 말고 진짜 비결을 털어놓으라는 기자의 말에 이 사장은 “남들이 나설까 말까 망설일 때, 그냥 자기자리에 있겠다고 안주할 때 먼저 치고 나가는 적극성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같은 적극성의 배경엔 타고난 성격말고도 ‘혜택받은 환경’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서울 강남의 8학군 출신이다. 영동고 2학년 생일 때 부모님으로부터 당시로서는 귀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를 선물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방학에 SF소설 60권 전집을 선물받아 일주일 만에 읽어치운 뒤 머릿 속에서는 이미 우주선이 쓩쓩 날아다니고 있던 터였다.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님 덕에 대학원 졸업 뒤 학비걱정없이 유학을 떠났고, 박사과정을 하다말고 귀국해 회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지원을 받았다. “아마 가족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면 새로운 일은 못했을 것”이라고 이 사장은 말했다.
가난을 원동력삼아 ‘하면 된다’는 막다른 정신으로 뛰었던 산업화시대의 성공담과 달리, 그는 유쾌한 낙관을 지니고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가 아니라 ‘될 것 같고, 안되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다양성의 매력은 그의 삶을 결정짓는데 큰 몫을 했다. 마음의 과학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을 전공하면서 ‘이거냐 저거냐’‘아니면 죽는다’ 식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키울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본 언어학자 촘스키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내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왜곡된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안으로서의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인터넷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나왔지만 나는 인터넷이야말로 다양성을 갖춘 독립미디어가 될수 있다고,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릎을 쳤어요.”
그 무렵 파리의 한 식당에서 고교 동창이자 사진가인 박건희(그는 95년말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이 사장은 그의 이름을 딴 재단 창립식을 다음달 가질 예정이다)를 만났다.
인터넷이 열어줄 신천지의 가능성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곧바로 귀국해 회사를 차렸다. ‘다음’. 미래를 향해, 여러소리(多音)가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면서.
두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이사장은 ‘재미’라는 단어를 25번 썼다.(‘인터넷’은 24번이었다). 회사를 차린 이유도 “돈은 못벌지 모르되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엔지니어로 출발해 지금은 연구에서 떠난 최고경영자(CEO)지만 새로운 일이 계속 발생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일이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98년까지만 해도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문제가 있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되레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긴다. 친구가 전직에 대해 고민한다면? “남의 시선이나 돈에 구애받지 말고 재미있게 하고싶은 일을 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좋은 차, 큰 집에 대한 욕심은 없다. 한창 주가가 올랐을 때는 재산이 7000억이었다지만 신문기사에서 보고 그런가보다 할 뿐, 그림의 떡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연봉은 4000만원이 좀 안됐고 올해는 4500만원 정도. 판공비는 월 50만원쯤 쓴다.
“회사 시작할 때 앞으로 10년안에 인터넷 성장세가 안정될 것이라고 봤어요. 앞으로 3년에서 5년 후엔 인터넷이 지금처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진 않을 거예요. 정체가 되면 이 일도 재미없어요. 나는 새로운 일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 때가 되면 아마 다른 일을 하고 있겠죠.”
어떤 일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지만 그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이 사장은 대답했다. “저는 어떤 게 재미있냐면요. 중국영화를 보면 저만치서 흙먼지가 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때 맨앞에 붉은 깃발들고 달리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은 우두머리가 아니더라도 재미는 있을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뜨겁게 혁명처럼 움직이는 곳에서 맨앞에 서서 깃발들고 달려가는거.”
7월 결혼 예정인 그는 결혼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좋은 CEO가 되는 것보다는 좋은 남편이 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런데 100명중 95명은 ‘너도 당해봐라’하는 분위기니 참 이상하다”며 그는 하하 웃었다.
▼이재웅 사장은▼
△1968년 서울 출생
△1986년 서울 영동고 졸업
△1991년 연세대 전산과학과 졸업
△1993년 연세대 대학원 전산과학과 졸업
△1993년-94년 프랑스 파리6대학 UPMC인지과학 박사과정 연구원
△1995년 2월 ㈜다음 커뮤니케이션 창업
‘다음’ 현황
포털서비스 개시 97년 5월
매출액 2000년 285억원. 2001년 1.4분기 137억원
시가 총액 5349억원(5월16일 종가 4만3600원 기준)
ID등록 가입자 2600만명(아시아 및 유럽 최대규모)
1일 페이지뷰 2억3000만
1일 로그인수 1950만
하루 방문수 2800만
액티브 유저(Active User)수 1500만
카페(동호인 모임) 개설수 65만개
종업원수 178명
▼재미있게 사는 법▼
당초 계획은 ‘이재웅의 성공비결’을 쓸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사장은 “성공비결은 재미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살기’를 써보기로 했다.
1. 재미가 없으면 만든다〓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건 지겹다. 없으면 내가 적극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만든다. 적극성은 큰 밑천이다.
2.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믿는 만큼 이뤄진다.
3. 재미있는 사람과 함께 한다〓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과 일하면 성공도 따라온다.
4. 남보다 한발 빨리 움직인다〓인터넷세상에서 ‘선점 효과’만큼 무서운 게 없다.
5. 멀리 본다〓바로 앞에 있는 재미없는 일도 멀리서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발견된다. 조금만 길게 보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