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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에 대하여

입력 | 2001-05-18 13:40:00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바삐 변하는 세상에서는 담담함을 유지하기 힘들지요. 무엇인가 튀지 않고는, 빛나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런 속도전의 시대에도 늘 그 자리에 그렇게 나무처럼 서 있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조동진의 '제비꽃'이나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과 같은, 안성기의 미소와 최불암의 너털웃음과 같은.

김정수 선생님이 쓰신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담담함이란 세 글자를 떠올립니다. 오래 전 '전원일기'에서도 그랬고 '그대 그리고 나'나 '파도'에서도 그랬지요. 무자극의 자극이라고 할까요? 물 흐르듯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깊은 통찰과 서늘한 깨달음을 얻게 되거든요. 김정수 선생님을 보고 무조건 출연을 결정했다는 차인표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참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대 전후의 싱그러운 감성을 드러내는 트랜디 드라마도 좋겠지만, 삶을 있는 그대로 담는 리얼리즘극에서, 배우는 진정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그 여자네 집!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네요. 엉뚱하게도 저는 이 제목에서부터 이문열 선생님의 일기 한 자락을 끄집어내었지요. '젊은 날의 초상'에서 부자와 가난뱅이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 그 슬픈 사랑의 흔적 말입니다.

술 취해 지나가는 옛 여인의 집이여.

눈물 흐를까 고개 젖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선 슬픔이여.

언 문고리에 손길 되어 머물다.

태주(차인표)가 영욱(김남주)과 결혼하지 않기로 합의를 본 후, 크고 멋진 영욱의 집 앞을 서성이는 장면에서 저는 이문열 선생님의 시를 되뇌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젊은 날의 초상'에서처럼 잊혀진 추억의 그림자가 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옛 여인'으로 흘려보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을 결혼으로 이어 그 사랑의 본질과 한계를 파헤치려는 것이 김정수 선생님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 '막연한 사랑'이 당하는 숱한 상처와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통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화해와 사랑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보여주시려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희한한 사회의 핵심을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틀어쥐신 것입니다.

빈자와 부자! 단순한 이분법으로 가르기 쉬운 소재지요. 가진 자의 타락과 못 가진 자의 슬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동화 같은 도식을 훨씬 넘어섭니다. 물론 가진 자들의 편견과 못 가진 자들의 콤플렉스도 충분히 부각시키지만, 그 너머 '생생한 인간'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지요. 태주의 처지를 알면서도 그를 사위로 받아들이려는 영욱의 아버지(박근형)나 부잣집 딸이면서도 가난한 전파상 사내를 좋아하는 영채(김현주)의 모습에서 복잡미묘한 인간의 행태를 보게 됩니다.

태주가 사랑하는 영욱의 집은 한 동네에 있지만, 태주는 아직 그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영욱의 식구들과 부딪힌 적도 없지요. 태주는 과연 영욱의 집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김정수 선생님이 태주의 그 짙은 상처를 또 어떤 담담함으로 표현하실까 궁금해집니다.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엔딩과 함께 흐르는 '진정 난 몰랐네' 역시 참으로 김정수 선생님의 극본과 어울리는군요. 끝부분을 흥얼거리며 다음 주를 기다립니다. '누구인가 불어주는 휘파람 소리 / 행여나 찾아줄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마음 허무해라 /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 난 몰랐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