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주자들이 손가락 놀림만 빠를 뿐, 깊이와 개성 없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렇게 믿고 있다면, 두 젊은 연주가가 새로 펴낸 라흐마니노프 음반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늑대를 키우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엘렌 그리모(30, 사진). 강인한 터치와 두꺼운 음색 때문에 ‘프랑스인 같지 않은 프랑스인, 여성 같지 않은 여성’으로 불린다. 청초한 외모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사뭇 다르다. 그가 텔덱 레이블로 내놓은 새 음반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에튀드 타블로’ 작품 33,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담겼다.
협주곡 2번은 일본 덴온의 음반 이후 8년 만의 새녹음. 템포의 밀고 당김을 강조한다든가, 콧노래같이 달콤한 터치로 호소하지 않는다. 그의 타건(打鍵)은 ‘파이프 담배 피워문 듯한’ 라흐마니노프의 남성적이고 목질 향내와 같은 강인한 서정을 발산한다. 무뚝뚝함을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을빛처럼 ‘침착한 감상주의’다.
러시아인 니콜라이 루간스키(29)는 에라토사에서 신보를 선보였다. 전주곡 C샤프단조를 비롯해 10개의 전주곡 작품23과 ‘악흥의 순간’ 작품16 등을 실었다. 무겁고 힘있는 부분에서도 힘을 남용하지 않고, 과장을 배제하면서도 달콤하게 마무리하는 여유와 폭이 산전수전 겪은 대가 못지 않다.
두 음반의 레이블인 에라토와 텔덱은 둘 다 워너 클래식스 그룹 산하.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두 신진 기예의 음반을 비슷한 시점에 내놓으면서 레퍼토리 중복을 피했고, 푸른색 계열의 비슷한 컨셉트로 표지를 꾸몄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