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모씨(42)는 최근 친구에게 축하분재를 보내기 위해 한 꽃가게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적당한 상품을 찾은 최씨는 주문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찾아봤지만 웹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도 전화번호는 없었다.
최씨는 꽃가게로 e메일을 보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최씨는 “왜 웹사이트에 전화번호가 없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주인의 핀잔. “웹사이트에서 주문을 하면 되지 왜 전화번호를 묻느냐”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상거래 사이트는 사업자 등록번호, 대표이사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메인페이지에 고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50대인 꽃가게 주인의 말투에는 ‘아직도 아날로그 마인드에서 못벗어났느냐’고 비웃는 ‘디지털 마인드’가 배어 있었다.
이 인터넷 꽃가게의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웹사이트에 자기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직원수가 적은 닷컴기업일수록 그같은 경향이 강하다. 야후코리아와 같은 큰 닷컴기업의 웹사이트에도 전화번호를 쓰지 않은 곳이 많다.
왜 그럴까.
웹사이트 구축대행업체인 디자인스톰의 이충환 전략기획팀장은 “대부분의 닷컴기업들은 직원 수가 적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공개하면 다른 일을 거의 못한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문의사항을 한꺼번에 모아두었다가 답변할 수 있는 e메일 등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전략 차원에서 전화번호를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야후코리아 정다희 고객지원팀장은 “우리 회사는 온라인 기업인 만큼 모든 것을 웹사이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실시간으로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전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조만간 채팅으로 상담할 수 있고 상담자가 고객의 웹사이트 화면을 조작하면서 설명해줄 수 있는 솔루션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화번호를 공개하더라도 숨바꼭질하듯 안보이는 곳에 숨겨둔 사이트들이 태반이다. 대개 고객이 찾다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 걸려오는 전화를 한통이라도 줄여보려는 속셈이다.
전화번호와 더불어 요즘 기업 웹사이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게시판이다. 몇 년 전만해도 오히려 게시판 없는 기업 웹사이트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웹사이트 구축대행업체인 홍익인터넷의 전형진과장(프로젝트 매니저)은 “게시판에 고객들의 불만이나 비방이 올라와 홍역을 치른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게시판을 당장 폐쇄했다가는 더 큰 반발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공사중’이라는 팻말을 내걸었다가 슬그머니 없애 버린다는 것.
전과장은 “전화번호든 게시판이든 당장 문제가 된다고 고객과의 접점을 끊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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