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9, 20일 이틀간의 여야정(與野政) 합숙토론회에 A4용지 7장짜리 합의문 초안을 미리 준비해갔다. 여기에는 △구조조정의 기본원칙 △금융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회수 △국가채무 등 8개 분야에 걸쳐 모두 28개 항목의 요구사항을 담았다.
토론회 결과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3개 항목이 합의문에 반영됐다. 그러나 합의문에 반영된 것들은 대개 선언적이고 두루뭉실한 것들인 반면 반영되지 않은 항목은 구체적인 수단과 조치에 관한 것들이다. 실속으로 따진다면 별로 관철시킨 게 없다는 얘기도 된다.
예컨대 기업구조조정 분야의 경우 여야정은 ‘기업 스스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여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문제기업은 채권단의 책임 아래 투명한 절차에 따라 조속히 처리되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6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공동발의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합의하는 데 그쳤다.
부실기업에 대한 조속한 실사와 6월말 이전까지 경영분리는 물론 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등 구체적인 처리방침 공표 등 한나라당이 당초 준비해갔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융구조조정 분야 역시 총론적으로는 ‘금융기관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수익성 건전성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개선 노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나간다’고 합의했으나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경우 조기 주식매각으로 민영화를 빨리 실현한다는 정도만 합의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은 이번 토론회를 실패작으로 평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한구(李漢久) 의원은 “우리 주장이 많이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대화를 통해 우리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정책당국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해서는 야당의 협력을 얻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경제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일 자체가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뿌듯해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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