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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주말농장서 '구슬땀' "풀냄새가 제일 좋아요"

입력 | 2001-05-20 18:46:00


“아빠, ‘솎아주기’가 뭐 하는 거죠?”

“열매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모두 자라기 힘드니까 ‘불량’ 열매들을 잘라내 주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탐스러운 열매를 거둘 수 있지.”

“내 친구들은 이게 뭔지 모르는데, 나만 아는 거네.”

20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구 신내동 먹골배 주말농장. 화사한 배꽃이 진 뒤 배나무 ‘열매 솎아주기’ 행사가 한창이었다.

올해 초부터 먹골배 주말농장에 참여한 김완영씨(42·산부인과 의사·중랑구 면목동)가 가위로 ‘불량’ 열매를 잘라내면서 둘째딸 희진양(10·화랑초교 3년)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같이 온 부인 최현숙씨(38)와 큰딸 수진양(12)도 때 이른 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거들었다. 정오가 지나자 한 손에는 양동이, 다른 손에는 도시락을 싸든 다른 회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배나무 한 그루에 연간 8만원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 가족들이었다.

‘먹골배’는 이 지역의 이름 ‘묵동(墨洞·먹골)’에서 유래됐다. 신내동 택지개발로 인해 이 일대 배밭이 많이 사라져 요즘은 과거의 ‘영화’를 찾기는 어렵게 됐지만 묵동 및 신내동 지역 20여만평은 아직까지 당도가 높고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신고’배 주산지의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배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가는 57가구 정도.

수진이와 희진이가 솎아놓은 열매를 바구니에 모으는 사이 이들의 손은 온통 흙투성이가 됐고 옷에는 풀물이 들었다. 그래도 수진이는 “이 세상에서 풀 냄새가 제일 좋아요”라며 “오늘 체험을 일기장에 써 솎아낸 열매와 함께 선생님께 보여드리겠다”며 신이 난 표정이다.

김씨는 “아이들이 그리는 풍경화에서 초록색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콘크리트를 떠나 흙과 자연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워 이 곳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가꾸는 과정 하나하나가 ‘산 교육’이라는 것이다. 신내동에 사는 현유환씨(44) 가족도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배나무 열매 솎아내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우기는 아들을 겨우 설득해 데려왔다는 현씨는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아이도 즐거워한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마친 주말농장 회원들은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때 이른 초여름 휴일 오후의 상쾌함을 만끽했다.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