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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평론가 이남호 '고은의 미당비판' 비판

입력 | 2001-05-20 18:46:00


시인 고은씨의 미당 비판(본보 5월16일자 A16면 보도)이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미당에게 문학을 배웠던 제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일반 독자들 사이에는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문학평론가 이남호(45) 씨가 제3자의 입장에서 이번 파문을 바라보았다.

◇"정치적 삶에 집중된 시 읽기, 잘가꾼 잔디밭서 잡초 찾기 식"◇

고은 선생의 미당(未堂) 서정주에 대한 비판은 충격적이다. 고은 선생은 미국 등지의 한국문학 행사에 단골로 참석하고 유네스코 주최의 ‘세계 시인의 날’에도 참석하시는 분이며, 또 남한 문인을 대표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기도 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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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이 쓴 미당 비판론 속에 인간에 대한 이해도 없고 시에 대한 이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욕설보다 더한 악담으로 미당을 터무니없이 폄하하고 자기를 세우려는 비열함이 가득하다면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미당 담론’에 펼쳐진 저 화려한 언어도단을 다 지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분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우리 문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씨앗도 아니기 때문이다.

◇욕설보다 더한 악담으로 폄하◇

그러나 한가지, 미당의 시에 대한 잘못된 혹평은 지적해 두어야겠다. 석굴암을 나쁜 귀신의 집이라고 부수려 하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듯이, 우리 문학사의 커다란 유산인 미당의 시를 쓰레기통에 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제지되어야 한다.

고은 선생은 ‘한 지상의 시인이 남긴 것들’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물음은 주로 미당의 정치적 삶에 집중된다.

고은 선생과는 달리 미당의 삶에서 정치적 삶의 비중은 매우 작다. 정치적 삶만으로 미당의 삶 전체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상과 인간의 삶이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단순논리가 역사에 남긴 끔찍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시인이 남긴 것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면서도 그는 미당의 시 서너편을 겨우 인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자화상’을 제외하면 미당의 시 세계에서 기왓장 하나의 역할도 못하는 궁벽된 졸시에 불과하다. 나쁜 마음을 먹고 혈안이 되어서 찾는다면, 아무리 잘 가꾼 잔디밭에서라도 잡초를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그는 ‘자화상’을 비롯한 미당의 시들이 사어(私語)로 이루어진 개인사적인 세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적인 언어가 아닌 서정시는 없다. 발표도 하지 않고 홀로 일기처럼 써내려 간 윤동주의 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용운이나 김소월 백석의 시가 모두 그러하다. 사적인 언어이지만 거기에 진실이 있기 때문에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다. 미당의 시가 지닌 호소력 역시 그러한 진실성과 보편성에서 온다.

또 ‘스물 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에 대해, 이십대 초반에 썼기 때문에 과장된 것이며 허상의 언어라고 비난한다.

50이나 60이 되어서야 뱉어낼 수 있는 탄식이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바람 속에서 클 수 있는 것은 젊은이이지 늙은이가 아니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더 어린 나이에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인생을 다 살아본 듯이 노래했다. 그것을 두고 랭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쓴 구절이기 때문에 그 구절은 엉터리라고 평하는 것을 나는 들은 본 적이 없다.

또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구절을 두고 미당의 부친이 마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마름이란 보통 매우 악질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장황하게 말하면서, 미당을 제 분수도 모르는 천민으로 규정한다.

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미당의 태생과 분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라는 구절을 내세워 미당을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사람’으로 단정한다.

◇명시 '자화상'을 가짜시라니…◇

이런 식의 시읽기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고은 같은 분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젊음의 방황을 강렬한 언어로 노래한 명시인 ‘자화상’을 가짜시라고 호도하고 미당을 치사한 인간으로 몰아간다.

왜 고은 선생은 터무니없는 비판의 악역을 자청하고, 나아가 자신과 문학의 품위를 애써 떨어뜨리려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봉황의 높은 뜻을 뱁새가 몰랐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