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세계경제에는 슈퍼 301조, 지적재산권 우선 감시국 등 잊혀져 가던 통상관련 문제들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반면 헤지펀드, 금융시장의 세계화 등 1990년대 후반 우리 경제를 뒤흔들었던 금융관련 단어들은 퇴조하고 있다.
▼한국경제 큰 어려움 겪을 수도▼
최근 미국 정부는 자국과의 교역에서 큰 폭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거나 불공정한 교역관행을 지속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간 채널뿐만 아니라 쌍무적 차원에서도 통상압력을 가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없어진 줄 알았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을 지적재산권 우선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쇠고기 및 자동차 등 8개 항목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해서는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하였다.
이에 반해 비슷한 시기에 개최된 IMF와 세계은행(IBRD)의 연차총회에서는 지난 수년간 기대할 수 없었던 정책전환이 일어났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세기 말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민주당 정권의 절대적 영향력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제도를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는 국제 금융위기의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엄격한 구제금융 조건을 강요하기보다는 지원국의 자체 개혁방안을 존중한다는 정책에 합의하였다. 이제 그동안 채무국에 대해 날카롭게 세워졌던 IMF의 칼날은 무디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부시 전대통령의 구시대 관료들로 재무장한 친 기업적인 미국의 새 행정부는 분명 또다시 과거와 같이 통상에 중점을 두고 대외 경제정책을 전개해 나갈 것이지만 예외적으로 클린턴 정부의 달러 강세 정책만은 승계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통상압력 강화’와 ‘달러 강세’ 유지가 향후 부시 공화당 정부의 대외 경제정책에서 두 중심축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새 정부는 달러 강세 유지를 통해 자본시장을 확충하고 장기호황을 이어가면서 통상압력을 강화하여 자국 제조업의 시장 확대도 도모하는 꿩도 잡고 알도 취하겠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미국의 양면적인 시도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1980년대 미국 공화당 정권 시대를 돌이켜 보자. 이 당시 미국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 교역상대국에 대해 통상면에서 압박을 가중시켰다. 이렇게 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엔 프리미엄’이 뿌리깊게 정착되어 엔화 강세와 달러 약세 현상이 추세화 되었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보면 현 부시 행정부의 통상 중시 정책은 달러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 미국 정부의 달러강세 정책의 견지와 일본의 금융시장 불안으로 엔화는 달러당 130엔을 넘을 듯 하였으나 이후 일본 금융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미국의 연이은 금리 인하 조치로 인해 달러당 120엔 초반에서 정체된 상황이다.
향후 미국 정부의 통상정책의 강도 여부에 따라서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과거와 같이 달러화는 장기적으로 약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경쟁력에 개혁 초점을▼
요컨대 현재 국제 금융가는 서로 상충되고 양립할 수 없는 미국 정부의 대외 경제정책 추구로 혼선을 빚고 있다. 전망컨대 앞으로 달러화는 단기적으로 방향성을 상실한 채 등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통상압력은 전방위에 걸쳐 강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잘못 대응하다가는 한국 경제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린턴 민주당 정권 때 외환위기를 당하고 부시 공화당 정권 하에서는 시장개방 협상에서 크게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부시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어 IMF체제 출범 이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틀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그리고 국내 산업의 장기경쟁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고 통상압력에는 적극 대비해야 할 때이다.
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