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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칼럼]황선홍을 찾아서…

입력 | 2001-05-22 14:31:00


필자가 황선홍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던 게 언젠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오사카 세레소에서 시즌 막판 어깨 부상을 당한 후에 잠깐 통화했던 것 같다. 수원 삼성에 입단했을 땐 '앞으로 얘기할 시간, 만날 시간 많은데 뭐..'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미루다가 '도둑'을 맞았고, 그 후로도 연락할 기회가 따르지 않았다.

얼마 전 이집트에서 열렸던 LG컵 출전 대표팀 명단에 오르고 또 급작스런 허리 부상으로 제외되었을 때, 연락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여타 언론에서 날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며칠 전, 황선홍이 1년 3개월 만에 다시 국대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곧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Now or Never' 란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한번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오늘(5/21) 아침, 바로 '그날'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페데레이션스컵은 히딩크 감독이 치르는 첫 국내 빅게임이다 보니 선수들의 관리, 언론 통제... 장난이 아닐 거란 짐작은 했지만, 대충 오전에 '축구판 레이더'를 가동시켜 보니 실제 '접근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언론 인터뷰는 말할 것도 없고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교환원은 아예 선수들에게 메세지 조차 건네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난감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오늘 아니면 서로 시간이 나질 않을 것 같았다. 오후 3시45분부터 미사리에서 오후 훈련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 후 저녁 시간은 대충 Free란 소식을 들었다. 시간은 없고 점점 불안했다.

축구협회의 정식 루트를 통해 황선홍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간... 콧방귀도 안 뀔 것 같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황선홍의 에이전트인 이영중 사장에게도 전화를 해 봤다.

"히딩크 감독이 워낙 철저하게 선수들 단속을 하고 있어서 아마 이번엔 만나기 조차 힘들 겁니다."

아뿔싸... 사방을 수소문한 끝에 필자의 측근 중에 대표팀의 얀 룰프스 기술감독관을 아는 사람을 찾아냈다. 다른 건 몰라도 룰프스 씨에게 전화를 해서 황선홍에게 필자의 핸폰 번호를 좀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곤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침 오후에 중요한 외부 회의가 하나 잡혀있어서 핸폰을 진동으로 해 놨는데 회의 도중에 황선홍으로부터 음성 메세지가 남겨져 있는 것 아닌가... 앙~~

연락처도 방번호도 남기지 않고 그냥 다시 전화 하겠다는 메세지만 남긴채... 아~~~ 얼마나 연락되기 힘든 사람이었는데...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다. 무작정 워커힐로 달렸다. 도착하니 오후 5시40분... 호텔 벨보이를 꼬드겨서 대표팀이 몇 층에 묵고 있는지, 저녁 식사는 어디서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 (대충 7시에 로비 옆 연회장에서 단체 식사한다고^^)를 일단 입수했고, 리노베이션 중이던 워커힐 호텔 로비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지하에서 7시까지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7시 10분쯤 로비로 올라가서 식사 중인 룰프스씨에게 황선홍을 좀 불러내 달라는 부탁을 할 참이었다. 7시5분, 로비로 올라와서 룰프스씨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세상에... 오늘은 특별히 외식하러 밖으로 나가는 차 안이라고... 언제쯤 호텔로 다시 돌아오냐고 물었더니 아무리 빨라도 9시... 눈물을 머금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왕 그까지 무대뽀로 달려왔는데 오늘 안 만나면 끝이란 생각으로 9시까지 기다렸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을 제쳐두고 내가 지금 미친 게 아닐까?', '이렇게 기다리고도 정작 만나지도 못하면 어쩌나...?', '정식 기자도 아닌 필자를 히딩크 감독이 보고..."야! 가!" 그럼 어쩌냐...?'...등등등

이젠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담배 한 갑을 작살내고 8시50분에 호텔 입구로 올라왔다. 이번엔 절대 코 앞에서 놓치지 않으리란 일념으로... 9시30분이 되어도 대표팀 버스는 나타나질 않았다. 9시 40분쯤 되었을 때 대표팀의 살림꾼들인 주무, 마사지사, 주치의 등이 봉고차에서 내렸다.

'오는 구나... 그래... 아랫배에 힘 빡 주고... 안 되면 배 째는 거야...' 각오를 다졌다. 곧 이어 이용수 위원장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그리고 저 만치서 버스 한대가 보였고 선수들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목발을 이용하는 히딩크 감독과 룰프스 씨가 선두에 서서 로비 쪽으로 다가왔다. 무작정 그에게 달려갔다.

나 - "아까 전화 드린 누구누구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룰 - "아닙니다. 선수들이 합숙 중엔 통화를 못 하게 되어있어서... 자, 당신 친구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시죠.. 제 할 일은 다 된 거죠?"

나 - "예스... 땡큐 베리 마치..."

그리고 입구로 걸어 들어오는 선수들을 살펴 보았다. 하석주, 고종수, 이영표, 최용수... 오랜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제일 끝에 (누가 왕고참 아니랄까봐^^) 황선홍이 어슬렁 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 - "안녕하세요?"

황 - (두어 번 훑어본 후에서야 알아 보고는) "어?? 안녕하세요? 아까 메세지 남겼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나 - "야..진짜 누가 대표 선수 아니랄까봐..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 아래 층 커피숍 가서 음료수나 한잔 해요! 그건 되요? 진짜 오랜 만이다.."

황 - (사방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다가) "아이... 음료수요... 어떡하지... 잠깐만요... 우리 외부인 아예 만나지도 못 하게 되어 있거든요..."

나 - "그래요? 그럼 여기 로비에서 잠깐 얘기나 해요... 아직 살아있네요? 잘 지냈죠? 2년 만이죠?"

황 - "예...덕분에... 언제 왔어요, 여긴?"

나 - "4시간 기다렸어요..."

황 - "어휴... 어떡하냐...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나 - "괜찮아요... 이렇게 라도 얼굴 보면 되죠 뭐... 엊그제도 골 넣었데요? 일본은 어때, 괜찮아요?"

황 - "네... 일본이야 뭐... 편하죠 뭐..."

나 - "가시와는 어디쯤에 있는데요? 오사카보다 좋아요?"

황 - "오사카가 낫지요... 가시와는 워낙 촌이라... 동경에서 한 1시간쯤 들어가야 하니까.."

나 - "애들도 잘 적응하고요?"

황 - "예... 큰애가 이제 학교 들어가요.. 나 학부형 돼요 ^^"

나 - "그래요? 몇살인데요?"

황 - "이제 8살이잖아요..."

나 - "야... 너무 한다.. 난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이러고 있는데 학부형이라니..."

황 - "후추는 잘 돼요? 잘 돼야죠..."

나 - "예... 뭐, 그럭저럭... 다들 어렵잖아요 요즘... 우리도 뭐.. 그냥 먹고 살죠 뭐... 히딩크 감독 장난 아닌가 봐요? 선수들 통제하는게..."

황 - "그런 것 같아요... 나도 어제 도착해서 이 사람하고는 처음이라... 아무도 못 만나게 해요. 외출도 안 시키고..."

나 - "그렇구나... 호텔 프런트에서 메세지도 못 남기게 하더라구요. 언제 대구 내려가요?"

황 - "카메룬이랑 수원에서 평가전하고 아마 내려갈 것 같은데 정확힌 나도 모르겠어요..."

나 - "일본엔 언제 돌아가요 그럼?"

황 - "그것도 아직은 확실치 않은데... 13일날 바로 또 J 리그 시합 있어서 바로 가야 돼요... 쉴 시간이 없죠..."

나 - "내일 무슨 대표팀 가족들과 함께 하는 행사 있다면서요? 애들이랑 식구들 다같이 들어왔어요?"

황 - "예... 오긴 다 같이 왔는데.. 애들이 너무 어려서 내일 올런지는 잘..."

나 - "일본엔 언제까지 있을 건데요? 이제 대충하고 들어오세요. 그래야 얼굴도 가끔 보고 그러죠..."

황 - "뭐,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인데요... 내년엔 들어오겠죠 뭐..."

나 - "그래요? 이번 시즌 끝나면 들어와요?"

황 - "나 지금 삼성에서 임대로 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 원칙적으론 들어오는 거죠, 키 (key)는 삼성에서 쥐고 있으니까... 두고 봐야죠..."

나 - "요즘도 그 팬클럽... You Will Never Fly Alone 친구들이랑 연락해요?"

황 - "예... 근데, 나 삼성에서 레이솔로 옮긴 다음엔 좀 뜸했어요..."

나 - "그렇구나... 이제 한국 왔음 좋겠어요... ^^ 참, 일본 연락처도 내가 갖고 있는 오사카 번호는 이제 꽝이네? 동경 갈 일은 가끔 있는데 가면 연락할게요... 그쪽 연락처 하나 적어줘요..."

황 - "그래요... (집번호와 핸폰 번호를 적어주며) 거기 오면 훨씬 편하게 볼 수도 있고... 오면 꼭 연락해요... 후추는 잘 되죠, 진짜...?"

나 - "예 ^^ 선홍씨가 첫방을 워낙 쎄게 날려줘서... 덕분에 잘 돼요^^"

황 - "다행이네요..."

나 - "가시와에 일본 애들은 잘해 주죠?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도 많고 하니까..."

황 - "그렇죠 뭐... 명보랑 상철이랑 같이 있으니까... 잘해 줘요..."

나 - "잘 됐네요... 참, 엊그제 또 페널티 못 넣었다면서요? ^^

황 - "후후후... 뭐, 한두 번도 아니고...^^ 하다 보면 들어갈 때도 있고 안 들어갈 때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

나 - "맞아요... 그나저나 일정이 빡빡해서 소주도 한잔 같이 못 하겠네요..."

황 - "그러게요...한잔 할 기회가 언젠가 오겠죠...^^"

나 - "그래요... 이번엔 또 못 보더라도... 가서 잘 하시고 건강하게... 참, (설)기현이도 보고 싶었는데 후다닥 다들 올라가 버리는 바람에... 제가 명함 드릴테니 가기 전에 연락이나 한번 하라고 전해 주세요..."

황 - "그럴께요... 근데, 기현이도 후추에서 인터뷰 했어요?"

나 - "사실은 윤정환 선수도 선홍씨 이후로 했어요^^"

황 - "그랬구나~ 얘기해 둘께요... 그나저나 미안해서 어떡해요? 진짜 차도 한잔 못 하고 이렇게 보내서... 오랜만에 대표팀 들어와서 하루에 두 번씩 연습할려니까 몸이 영~~ ^^ 지금 마사지 받겠다고 얘기도 해 놓고 해서..."

나 - "만날 때 되면 또 보겠죠 뭐...^^"

황 - "나 돌아올 때까지 후추 잘 하고 있으면 그때 또 다시 만나겠죠 뭐..."

나 - "그래요.. 이제 올라가 보세요... 참, 사인 좀 몇 개 하고 올라가세요... 우리 독자들 주게..."

황 - "그래요... 어디? 여기?"

그렇게 황선홍과의 10분 동안의 재회는 끝이 났다. 4시간 기다려서 10분 만남... 이거 밑져도 아주 다부지게 밑지는 장사지만... 그래도 필자는 좋았다. 황선홍은 2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사심(?) 을 완전히 버린 듯한 털털한 대답, 공손하면서도 정감 있는 어투, 조막만한 얼굴까지...^^ 늘상 술자리에서 하는 말이지만, 필자가 만나 본 많은 스포츠 스타 중에서 진짜 cool 한 선수가 바로 황선홍이다. 술 한번 같이 한 적 없고 말을 놓지도 않는 입장이지만, 인간 아주 cool 한 '진국'이다.

'이번 대회 자신 있느냐? 15개월 만에 대표팀 복귀한 소감은 어떠냐..?' 등의 유치한 질문은 물을 생각도 없었다. 그냥 좋은 사람 오랜 만에 만나서 잠깐 나눈 그런 '보통 대화'였다. 좀 더 쑈킹한 인터뷰를 기대했던 후추인이 있었다면 미안하지만 이번엔 후추 아니라 후추 할아버지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긴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후추 명예의 전당 1호 헌액자로 황선홍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한가지만 간절하게 바라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엔 제발 황선홍이 다치지 않고 뛰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냥 잘 뛰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2년 전 오사카에서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나 꼭 한국 가서 명예회복 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꼭 다시 돌아가서 은퇴할 거예요..." 그래, 정말 그래줬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도 황.선.홍. 하면 '똥볼' 또는 '세대교체의 최대 걸림돌' 정도로 생각하는 수많은 축구 팬들에게 보란 듯이 한방 제대로 날리고 나서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는 황선홍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필자는 믿는다. 그리고 소망한다. 굴곡과 좌절 투성이인 인간 황선홍의 축구 인생에 꼭 한번의 '정점'은 다시 찾아올 것을...

자료제공 :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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