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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LA리포트]부시의 진면목 3가지

입력 | 2001-05-22 18:44:00


“지난 8년 동안 클린턴 대통령을 두 번밖에 못 만났는데 부시 대통령 들어서는 벌써 다섯 번째 만났다.”

얼마 전 미국 언론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100일에 대한 평가를 크게 다룬 바 있습니다만 한 미국 재계대표의 이 말처럼 부시 정부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빌 클린턴 전대통령 역시 전통적인 민주당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인 신민주당 노선을 펴 종종 “공화당과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부시 정부 들어 미국은 정말 ‘부자들의 천국’이 되고 있습니다.

▼"온정적 보수주의" 빈말 이었나▼

그러나 이는 예견됐던 일이고 취임 후 드러난 부시 대통령의 진면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선거에서 내세웠던 ‘온정적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먼 강경보수라는 점입니다. 둘째, 워싱턴에 초당파적인 새로운 협력의 정치를 도입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철저하게 정파적이라는 평입니다. 특히 광범위한 합의를 중시했던 클린턴 전대통령과 달리 부시 대통령은 조그만 표 차이라도 밀어붙이는 스타일입니다. 셋째, 텍사스식 보스정치로 눈치보지 않고 정치자금을 준 기업과 사람들을 확실하게 챙긴다는 점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워싱턴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정치인으로 이익단체들의 포로가 되어버린 워싱턴을 개혁하겠다는 참신함을 강조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워싱턴의 노회한 정치인들이 무색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돈줄을 챙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시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법안인 파산법 개정안입니다. 과거에는 서민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법원에 파산신고를 하면 모든 채무로부터 보호를 받았는데 개정안은 파산 후에도 신용카드 빚은 계속 갚도록 규정해 신용카드사를 위해 서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개악이라고 사회단체들이 반발했고 클린턴 전대통령도 이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사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를 일사천리로 추진해 통과시켰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텃밭인 텍사스주의 후원자들을 배려해 텍사스주의 개발업자는 예외라는 기이한 예외규정을 만드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말입니다. 즉, 일반서민은 파산을 해도 카드 빚을 갚아야 하지만 텍사스의 억만장자 개발업자들은 안 갚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최근 발표한 에너지정책입니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도 공개적으로 비난했듯이 캘리포니아 단전 사태로 상징되는 미국의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즉, 공급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대형 에너지사들의 합병에 의해 등장한 초대형 에너지 독점업체들이 전력,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의 규제 철폐를 악용해 시장을 조작해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며 이는 체계적인 에너지 절약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석유회사 사장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최대의 자금줄이 에너지회사들인 정치인답게, 사태를 아전인수격으로 호도해 지구환경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알래스카 국립공원 내의 석유시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1970년대 대형 원자로 사고 후 중단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개하는 등 대대적인 에너지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혀 일반여론뿐만 아니라 공화당 의회까지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노동, 여성, 환경 등 사회운동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부시 행정부 출범 100일을 “최악의 100일”이라며 분노합니다.

▼노골적 업계 감싸기 비난 거세▼

한편 현 사태는 시민운동의 전설적 투사로서 정치개혁을 위해 녹색당을 만든 뒤 지난 대선에 출마해 민주당 표를 갉아먹음으로서 부시 대통령을 당선시켜준 랠프 네이더의 책임이라는 ‘네이더 책임론’을 다시 제기하고 있습니다. 네이더는 그의 출마가 공화당을 돕는다는 지적에 대해 민주당이 공화당과 차이가 없다고 반박했었는데 “이게 정말 차이가 없는 것이냐”는 비판입니다. 이에 대해 네이더는 민주당이 부시의 법안들을 의회에서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는데도 저지는커녕 상당수 의원들이 오히려 지지표를 던졌기 때문에 통과됐다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은 민주당에 있고 역시 민주당은 공화당과 차이가 없다며 부시대통령에 대항해 제대로 싸우기나 하라는 응수입니다.

손호철(서강대 교수·현 UCLA 교환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