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설움 받고 농사짓다가 쫓겨나 다시 시작하는데 이것도 그만두라고?”
생태계 파괴 논란이 일고 있는 경기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 민통선 지역에 대한 공동실태조사가 벌어진 21일 오후.
농민들은 생태환경의 보고(寶庫)인 이 지역을 보전해야 한다는 환경단체 간부들과 교수 등을 비난하며 출입을 막았다.
습지였던 이곳은 인근의 미군 스토리 사격장 안에서 출입영농을 하던 임대농 19가구가 군 당국의 동의를 얻어 4만여평의 습지를 논으로 만드는 개답(開畓)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공동실태조사에는 서울대 환경생태계획연구실 김귀곤 교수와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 군·환경부·경기도 관계 공무원, 농민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4만여평의 점원리 일대는 제3땅굴과 직선으로 7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경의선 복원 공사 현장과도 100여m 거리에 있다.
계단식 논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일대 땅은 예전에 습지였음을 보여주듯 심한 가뭄에도 물기를 머금고 있다. 개답이 이뤄지지 않은 주변에는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와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김 교수는 일대를 둘러본 뒤 “버드나무와 단풍종류인 신나무, 아카시아 순으로 식생이 분포한 것으로 미뤄 계곡물이 넘쳐 생성된 습지가 틀림없다”며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임이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미 개답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라 복원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 교수는 동물의 이동통로가 되도록 수로를 만드는 조건을 제시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김 교수의 말에 경직됐던 표정을 풀고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그깟 수로를 못 만들겠느냐”며 금세 환한 웃음을 지었다.
환경부와 경기도 관계자들도 갈수록 개발열기가 높아지는 접경지역 내 사업에 대해서는 환경생태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점원리 인근 250만평 규모의 미군 스토리 사격장은 주민들 모르게 73년 미군에 공여돼 사격장으로 운영돼 왔으며 지난해부터 군 당국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농민들의 출입을 금지하기로 하고 농지 매수, 대토 마련, 실농보상비 지급 등 보상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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