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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이부부의 세계 맛 기행]오뎅에 울고 오뎅에 웃고

입력 | 2001-05-23 10:23:00


안녕하세요? 꾸벅. 결혼한 지 2년 된 꿈틀이 부부 홍성만(30·홍대리), 설윤성(28·설마담)입니다. 왜 꿈틀이 부부냐구요? 크게 한번 움틀해 보자는 취지로 지난 3월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면서 애칭 하나 만든 겁니다.SK글로벌 입사 동기로 만나 결혼한 우리는 "세상 한번 크게 보고 넓게 살아보자"고 어렵게 합의해 직장 그만두고 얼마 안되는 돈 탈탈 털어 떠났습니다. 꿈틀이 부부, 홍대리와 설마담은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두루 다닐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체험한 세계 곳곳의 맛문화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하니 많이 성원해 주십시오. 다시 꾸벅.

어린 시절 학교 앞 최고의 군것질 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떡볶이와 끝없이 퍼먹던 오뎅 국물이 아니었을까요. 나이 들어도 오뎅의 맛은 변함이 없지요. 추운 겨울 포장마차에서 흐물흐물할 정도로 푸욱 익은 그놈을 파 숭숭 썰어넣은 간장에 살짝 담갔다 먹는 맛, 그게 바로 행복 아닌가요.

생선을 갈아 튀긴 오뎅을 요즘은 어묵이라고 표기하지만 여기선 그냥 오뎅으로 쓸랍니다. 아무튼 한 개를 먹어도 국물 후하게 퍼주는 아주머니 인심이 생각나 이국땅에서 오뎅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오뎅을 만난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쌀쌀했습니다. 뜨뜻한 국물 한 사발이 간절해진 꿈틀이 부부는 오사카의 골목 '도톤보리'에서 이름난 음식점 '다코우메'를 찾았습니다. '다코우메'는 퇴근 후 직장인들이 들러 술 한잔 하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오뎅집입니다. 자그마치 150년 간 오뎅국물이 마른 적이 없는 유서 깊은 곳이라나요. 오뎅, 하면 포장마찬데! 하는 생각에 처음엔 '우리도 오뎅 오래 먹었어' '오뎅이 유서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하며 속으로 거만을 떨었습니다.

고풍스런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10여명이 앉을 만한 바(Bar) 형태의 조그만 공간이었습니다. 냄비라고 하기엔 좀 큰 드럼통에 부글부글 오뎅이 끓는 게 보이더군요. 일본말을 거의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한참 중얼중얼하더니 '2000엔 세트'라는 겁니다. 허헉, 우리 돈으로 2만원? 오뎅값으론 좀 과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조금 뒤 푸짐하게 펼쳐질 오뎅 세트를 기대하며 ‘오늘 오뎅으로 한번 배 터져보자’고 작정했지요.

그러나 아주머니가 내온 조그만 양철 접시 위에는 삶은 계란 1개, 곤약 1개, 문어구이 2쪽, 오뎅 2개, 유부오뎅 1개가 전부였습니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러면서 먹는 동안 정말 흐뭇했습니다. 노란 겨자에 찍어 먹은 오뎅은 매콤한 맛이 입 안에 오래 머물렀고 진한 국물 맛은 그야말로 끝내줬습니다.

순식간에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운 우리는 이제 뭐죠?라는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다음 것을 빨리 내놓으라고 마구마구 눈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까딱도 안하는 겁니다. 설마, 설마. 정말 설마가 사람잡데요. 오뎅 한 접시에 피 같은 2000엔, 거기다 세금까지 별도로 지불하면서 우리 부부 허탈감에 못다 채운 허기까기 겹쳐 배 더 고팠습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오뎅집의 가격은 대부분 이 정도랍니다. 배부르라고 먹는 게 아니라 술안주로 조금만 먹는 거라는군요. 물론 일본에도 포장마차나 조금 싼 이자가야(술집)에서는 저렴하게 오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우리처럼 국물 퍼주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오래 끓인 국물이 그 집만의 재산이라서 그렇다나요.

일본에서 우리 부부를 서럽게 한 오뎅은 홍콩에서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어느 뒷골목에 있는 쌀국수 전문 식당 문휘흑어환대왕(文輝黑魚丸大王)이었습니다. 무협지 악당두목 이름 같은 이 곳에 국수를 먹으러 들어간 우리는 오뎅을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죠. 그 집에는 국수 국물 고명에 따라 이름이 다른 30~40 가지 쌀국수를 팔고 있더군요. 최고 인기 국수는 각종 재료를 넣어 동그랗게 만든 오뎅을 고명으로 올린 것이었습니다.

오뎅을 국수에? 당장 오뎅국이 연상됐지만 생각과는 다른 맛이었습니다. 돼지뼈와 내장을 넣어 곤 구수하고도 담백한 국물, 쫄깃쫄깃한 쌀국수, 그 위에 튀기지 않고 데친 동그란 어묵이 올라왔는데, 홍대리 거는 오징어 오뎅이었고 설마담 거는 새우 오뎅이었죠. 비교적 호화로운 재료와는 달리, 튀기지 않은 오뎅이 국물과 쌀국수와 어우러져 소박한 맛을 냈습니다. 거기에 마늘 다진 것을 넣어 휘휘 저어 먹으니 속이 훈훈해지는 것이 한끼 식사로 손색이 없는 요리가 된 겁니다. 그래도 파 숭숭 썰어넣은 간장에 흐물흐물한 오뎅 찍어 먹는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꿈틀이 부부 (tjdaks@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