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곤 류승완 감독
영화「베사메무쵸」의 전윤수,「킬러들의 수다」의 장진,「꽃섬」의 송일곤,「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완 감독...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이들은 모두 70년대에 출생한 젊은 감독들이다.
최근 한국 영화 감독들의 데뷔 나이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강제규, 홍상수 등 주로 386세대 감독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충무로에서 이들보다 어린 30대 안팎의 감독들이 재기 발랄함과 패기를 앞세우며 속속 부상하고 있는 것.
전윤수, 장진, 송일곤 감독은 모두 71년생이며「죽거나 혹은 나쁘거나」한 편으로 일약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류승완 감독은 73년생,「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민규동 감독은 70년생이다.
그런가하면 영화사 `기획시대'가 준비하는「해적 디스코왕이 되다(가제)」의 김동원 감독과「일단뛰어」의 조의석 감독은 더욱 젊다.
올해 27살로, 99년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김감독은 「로맨스뽀뽀」등 단편 영화를 통해 실력을 쌓은 신예. 그는 `해적'이라는 별명을 가진 싸움꾼이 짝사랑하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스코를 춘다는 다소 황당한 소재의 장편데뷔작 「해적…」을 준비중이다.
영상원(1기)에 최연소 합격자이기도 한 조의석 감독은 올해 25살이다. 졸업 작품인「환타 트로피칼」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은 그는 고등학생들 앞에 어느 날 거액의 돈가방과 시체가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일단뛰어(가제)」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다. 시나리오도 직접 썼으며, 올 8월에 크랭크인한다.
보통 영화판에 뛰어들어 연출부 `막내'생활을 거친 뒤 약 5년 정도의 훈련을 받고 나서 메가폰을 잡는 이전의 감독들에 비하면 이들은 `행운아'에 가깝다.
물론 20세이던 89년「블랙시티」라는 장편 극영화로 최연소 감독 데뷔 기록을 세웠던 최야성 감독이나 97년 22살의 나이로 감독 도전장을 내민 이서군(`러브러브') 씨도 있었지만 이는 정말 드문 경우였다.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는 "20대 중반의 젊음 감독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연출 스타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상투적인 드라마 구조나 오락성, 한정된 아이템 등 한국 영화의 일정한 패턴들을 깨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충무로 감독들의 연령층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은 그만큼 감독이 되기 위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현상은 90년대 들어 한국영화아카데미나 영상원, 각 대학 영화과, 영화단체 등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최근 하나둘씩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여기에 감독난을 겪고 있는 충무로에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자본들이 눈높이를 낮춰 독특한 아이템과 능력을 검증받은 젊은 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있는 것.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제작사들은 A급 감독을 구하지 못할 바에야 주 관객층인 젊은들의 감각에 맞출 수 있는 감독들을 선호한다. 예외도 있긴 하지만 군사정권 아래서 젊은 시절을 보낸 중견 감독들은 왕성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 억압을 받은 탓인지 지금도 달라진 관객의 감성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국 영화 시스템이 합리화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 철저한 기획을 통해 영화가 완성되기 때문에 연출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조기 데뷔'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영화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무래도 경험과 연륜이 낮다 보니까 전체 관람객을 아우를 수 있는 철학적 깊이가 있는 영화보단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얄팍한' 영화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조재영 기자]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