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에 따르면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 옛사람들의 나무신앙은 그만큼 깊고도 오래된 것인 듯 싶다. 당산(堂山)나무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마을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하는 마을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산나무는 마을 입구나 동네 언덕에 서있는 아름드리 거목으로 수종은 대개 소나무나 느티나무라고 한다. 당산나무 밑에는 돌로 된 제단이 있거나 나무 옆에 작은 사당이 들어서기도 했다. 당산나무는 신목(神木)이었던 것이다.
▷신이 든 성스러운 나무를 누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누구든 이 나무를 베거나 해치면 큰 재앙을 입게 되고, 천재지변으로 나무가 쓰러지거나 다쳐도 그 마을은 화를 면치 못한다고 믿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철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다음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동제(洞祭)가 열렸다고 하는데 이를 당산제(堂山祭)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제사가 거의 당산나무 아래에서 행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당산나무는 옛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명예총재가 엊그제 한 자리에서 “옛날에는 노목(老木)을 건드리면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했다”고 했다는데, 여기서의 노목은 바로 당산나무를 가리킨 것 같다. 그런데 노목이란 다름 아닌 자신에 빗댄 것이니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바로 당산나무이거늘 누가 감히 건드려. 이런 고연!’이란 소리가 되는 셈이다. 요즈음 곁의 사람들이 합창하는 듣기 좋은 ‘JP 대망론’에 쓴소리가 이어지자 ‘노목’이 어지간히 언짢았던 모양이다.
▷이양하(李敭河)선생은 수필 ‘나무’에서 ‘나무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라고 했다. 나무는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면서도 만족을 안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노목을 숭배한 것도 오랜 세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자족하고 베풀 줄 아는 그 덕(德)을 기린 것이 아니겠는가. 나무는 탐욕도, 허세도 부리지 않는다. 당산나무를 숭배하지는 않을 망정 욕되게는 하지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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