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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노경주역의 김미숙

입력 | 2001-05-23 18:39:00


보슬비가 내리던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 첫 아들을 낳는라 2년간의 공백기간을 가졌다지만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탤런트 김미숙은 마치 세월이 비껴간 듯 전과 그대로였다.

지금은 8개월된 승민이를 낳느라 14㎏이나 불었던 몸무게가 산후 일주일만에 10㎏ 빠져 역시 배우 체질을 입증했다고 은근한 자랑도 내놓았다. 그래도 예전 체중에 비해 1㎏가량 늘었지만 아직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어 행복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여자의 어디에서 그런 독기가 나왔을까. 이번 주말 종영을 앞둔 KBS 주말드라마 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극중 노경주역을 맡은 그녀의 대사였다.

“내 옆에서 한 발자욱도 못 가. 내 옆에서 늙어 죽어!”

12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람난 남편 윤성재(이경영)가 별거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토해낸 이 대사는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의 대사, ‘널 부숴버리겠어’ 못지 않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어떻게 그런 엽기적 표정을 지을 수 있냐며 ‘사람을 다시 봤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옆이 어디를 말하는 거야, 왼쪽이야 오른쪽이야’라고 놀리시기도 하고…”

바람난 남편 때문에 15년간 빈틈 한구석 없던 결혼생활이 무너져내리는 참담함을 겪고있는 노경주는 주부 시청자들의 동정을 한몸에 받고있다. 하지만 그것은 MBC ‘아줌마’의 오삼숙과 또 다르다.

“노경주는 평생 온실속에서 자란 여자에요. 그런 여자에게 남편의 외도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죠. 처음엔 조용히 남편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가, 실패한 순간 자존심의 상처를 견딜 수 없는 거에요.”

하지만 노경주가 아닌 시청자로서의 김미숙은 생각이 좀 다르다. 윤성재의 외도를 40대 남자의 ‘뒤늦은 자아 찾기’로 보고 있는 일반적인 시각을 부정하고 있는 것. 윤성재에게 다가온 사랑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흔드는 ‘운명적인 사랑’이어서 더욱 애절하다는 게 김미숙의 생각.

따라서 김미숙은 사회 통념과 관습, 윤리 때문에 그 사랑을 포기하고 신우(이요원)를 보내야하는 윤성재를 무척 불쌍하게 받아들인다.

“제가 노경주라면 저는 남편을 풀어주겠어요. 물론 그의 사랑이 이기적이라 분하고 속상한 것도 사실이지만 ‘늙어서 당신이 내 수발을 들어주는 것이 편할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하는 남자를 붙잡기에는 이미 늦은 거 아닌가요.”

그럼 긴 인생에서 뒤늦게 찾아오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미숙의 생각을 물어 보았다.

“결혼전에는 ‘남자가 바람도 필 수 있지’하던 생각이 결혼을 하고나니까 ‘내 남편은 안돼’로 바뀌더군요. 살다보면 남자나 여자나 결혼 후에도 마음 설레게 만드는 이성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그런 연애감정은 삶의 활력소 정도로만 소화해낼 순 없을까요.”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