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거센 물결과 이에 따른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면서 교육분야에서도 온통 경쟁력과 효율성이라는 잣대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뒷전으로 크게 밀리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크게 심화되고 있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지위와 부의 세습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그 사회적 파장은 의외로 작았다.
‘서울대 2000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의 경우 전문직이나 고위관리직 학부모를 둔 학생이 급증하고 있는데 반해, 생산직 근로자나 농어민 자녀의 입학률은 급감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에 따라 고급 관리직 종사자가 자녀를 서울대에 보낼 가능성은 생산직의 30배가 넘는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그런가 하면 최근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일반계 고교의 서울대 진학률은 서울 강남이 가장 높고, 강북의 어느 구는 강남구의 10분의 1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가계별 사교육비 지출이 이러한 편차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 절실▼
결국 사회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풍성한 문화환경에서 성장할 뿐만 아니라 고액과외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손쉽게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학벌사회가 제공하는 사회적 프리미엄의 도움으로 보다 빨리 출세의 사다리를 오른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서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누구나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박사학위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 자식 등록금 때문에 부모 허리가 휘는 우리와는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자기 정당화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뒤진 계층의 자녀에게도 교육기회의 평등화를 통하여 사회적 계층상승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길을 터 주어야 한다. 그래서 대표적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도 대학입학, 취업등에서사회적 약자에게 일정 쿼터를 주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제도화하고 있고, 개개 대학차원에서도 학생들의 대표성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적잖은 정책을 고안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분 세습화’의 주범이 바로 학벌사회인 점을 고려할 때, 일류대라는 간판이 지니는 부당한 사회적 특권과 특혜를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교육재정의 확충을 통해 학교교육을 내실화 함으로써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문제해결의 대도(大道)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불우한 집안 출신의 자제들에게 장학제도를 확대하고, 저소득층에 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 또한 정보화사회 도래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정보통신관련 정보나 기술에의 접근에서 소득계층간에 정보격차(digital divide)가 빚어지지 않도록 줄기차고, 세심한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과외비를 많이 쓰는 학생에게 크게 유리한 시험위주의 대입전형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입전형을 다양화, 특성화하는 경우에도 새로운 방식이 가난해도 머리 좋고 공부에 의욕 있는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자녀가 많이 재학하고 있는 실업계고교와 다양한 직업훈련기관, 그리고 전문대학의 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데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국립대 역할 새로 조정해야▼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이 스스로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이제 서울대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니라 특수 사적재(私的財)에 가깝다. 생산직 근로자나 농어촌 출신 자제에게 그림의 떡인 대학은 이미 국립대학이 아니다. 국립대학이라면 마땅히 기본적 자질은 충실하나 가난해서 사립대학에 가기 어려운 학생에게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립대학에서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소홀히 하는 분야, 특히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국립대학이다.
교육을 매개로 한 신분의 대물림은 이제 그쳐야 한다. ‘세습사회’는 사회의 통합성과 역동성을 해치고, 종극적으로는 경쟁력마저 훼손하고 만다. 이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안병영(연세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