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시안의 타켓 1호가 아마 저일 겁니다.”
1993년 시험관 송아지, 95년 슈퍼 젖소, 99년 복제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킨 황우석(黃禹錫·48) 서울대수의대 교수의 얘기다. 지난해 그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에 의한 인간배아 복제 연구에 성공, 난치병 극복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비윤리적 연구’라는 비판을 한몸에 받기도 했었다.
18일 발표된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은 기존 체세포 복제는 물론 불임치료 목적 이외의 배아연구를 일절 못하게 하는 등 생명공학 연구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예고하고 있다. 황교수는 “시안대로 법이 제정된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의 절반은 위법이 된다”고 했다.
기자가 황교수를 찾은 23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부속 동물병원 뒤켠에 자리잡은 생물공학연구실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우주복 모양의 연구복을 입은 연구원들은 찜통같은 멸균실에서 소의 난소에서 난자를 분리해내고 세포를 배양하는 등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발표된 시안에 따르면 어떤 연구를 못하게 됩니까.
"의료치료에 이용되는 약품 중 생합성이 안되는 약품이 있습니다. 약효는 뛰어나지만 대량생산이 안돼 값이 엄청나게 비싸지요. 이런 약품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우유생산량이 많은 젖소의 젖샘세포에 치료에 필요한 약품을 생산할수 있는 유전자를 적중시키는 연구를 합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약품이 우유를 통해 나오는 거지요. 여러나라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인데 우리도 몇년 간에 걸친 기초연구 끝에 몇달전 유전자 적중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시안대로 법이 제정되면 이 연구를 못하게 됩니다. 또 인간의 장기를 공급해줄 돼지를 복제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전세계 3000여개 연구팀에서 매달리고 있고, 우리도 올해나 내년쯤 결실을 낼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금지됩니다. 인간 배아복제를 통한 치료용 세포생산 연구도 더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지요.”
-현재 하고 있는 연구가 금지되기 때문에 생명윤리법안을 반대하는 건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나 절박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초 의료기술 개발이 원천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에게는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가 ‘빛’이나 다름없거든요.”
-시안을 만든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측은 생명에 대한 경시, 생명공학기술의 오남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100% 동의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내놓아야지 무조건 연구를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대안이 있습니까.
“생명윤리를 법으로 완벽하게 규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규정일 뿐, 법보다 더 강하고 큰 울타리 역할을 하는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첫째, 초등학교 때부터 생명윤리교육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21세기는 좋으나 싫으나 생명공학과 함께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개념을 명확히 해야합니다. 배아복제의 경우도 생식용 복제, 즉 인간의 개체복제와 치료용 복제를 나누어 규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에서도 생식목적으로 자궁착상을 시도하는 복제는 형법으로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용 복제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못하게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셋째는 시민과 함께 하는 생명공학 기술이 되게 하는 겁니다. 일정규모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에는 윤리학자와 법학자 철학자가 참여해 생명공학자가 못보는 점을 지적하게 합니다. 결국 이번 시안도 다양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제정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황교수는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래도 지구는 돌듯, 우리 연구는 계속된다”는 그에게 “도대체 생명윤리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
“생명의 고귀함을 지키는 것이 생명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질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이 분들의 고통을 달래고 생명을 지켜주는 일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목적성이 생명윤리법의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돼야한다고 믿습니다.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합목적성이 아니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황교수가 수의사라는 점이 떠올랐다. 동물의 생명을 지키는 수의사가 사람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동물의 생명 역시 중요하지요. 하지만 동물과 사람의 가치를 같은 수준으로 놓아야한다면 우리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양질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은 젖소의 역할이자 숙명이지요.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숱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자신이 조물주가 된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웃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연구를 할수록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한 목사에게 들었는데, 신은 사람의 손을 통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일이 있다며 황교수는 체세포 복제소의 예를 들었다. 구학이라는 소에게서 채취한 세포로 송아지가 잇따라 태어나고 있는데 몸집은 비슷해도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IQ(지능지수)는 복제돼도 EQ(감정지수)는 복제가 안된다니,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다고 했다.
황교수가 소를 연구하게 된 것은 숙명이었다. 어려서부터 소와 함께 자랐다.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소 소작을 해서 어린 6남매를 키웠다. 남의 소를 길러주고 새끼낳으면 송아지를 받는 식이었다. 학교 파하면 소 꼴 먹이는 게 그의 일이었다. 중학교 때 대전으로 유학을 떠났다. 모처럼 집에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동구밖까지 나와 아들을 기다렸다. 어머니의 종아리는 거머리에 쏘여 뻘겋게 돼있었다. 소 풀을 뜯다 얼마나 거머리에 쏘였으면…. 그는 식구들을 먹여살린 소 연구에 평생을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아들과 전화할 때 “걔들(복제소를 지칭) 잘있니?”하고 묻는 어머니는 아들이 면서기가 되기 바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서울대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당연히 의과대학에 가리라는 남들의 예상을 깨고 1, 2, 3지망을 내리 수의대를 썼다.
삶이란 오묘한 것. 박사학위를 딴 뒤 순조롭게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면 오늘날의 황우석도 없었을게다. 뜻밖의 시련, 뜻밖의 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내에 엉뚱한 파벌문제가 불거져 뜻하지 않게 낭인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시골가서 농사지으려고 했지요. 그때 정창국 수의대학장이 선진국의 가장 앞서가는 연구팀에서 미래를 대비하라며 일본 홋카이도대학에 가도록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가나가와 히로시라는 세계적인 석학 밑에서 인공임신을 공부했습니다. 그 좌절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복제소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86년 서울대교수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오른 귀국비행기에서 그는 몸집 크고 우유 많이 내는 복제소를 만들어 축산농민들을 돕겠다는,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포부를 세웠다.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에 농촌이 뒤숭숭하던 시절이었다. 복제동물을 만든 나라는 많지만 식량문제와 연관시킨 곳은 없다고 황교수는 덧붙였다. 연구에 몰두하던 이듬해 ‘죽을 병’(어떤 병인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에 걸렸으나 몇차례 대수술 끝에 살아났다. 88년 쌍둥이 송아지 탄생에 이어 시험관 송아지, 슈퍼 젖소, 영롱이 탄생의 신화가 이어졌다.
하나의 연구가 결실을 보기까지 수천 수만번의 실패가 거듭되는 것이 이 일의 특징이다. 열번 백번도 아니고, 수천 수만번 실패했는데도 어떻게 그 일을 또 거듭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몇년 째 백두산 호랑이 복제실험을 하고 있는거 아시지요? 앞으로 몇십만번 더 실험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도 장담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합니다. 그게 과학자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해야하고, 하고 싶고, 또 성공한다면 상당한 학문적 희열을 주는 일이니까요.실패의 과정 속에서도 가치있는 과학적 결과를 얻을 수도 있구요.”
그는 ‘건방진 표현일지 모르지만’하고 전제한 뒤 “우리 식구들은(황교수는 실험실 연구원을 ‘식구’라고 불렀다) 사회적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쉽고 편하게 살 수도 있겠으되 그러면 아무일도 이룰 수 없다고 믿는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하며 기술을 팔라는 제의도 숱하게 받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이 공익에 보탬이 된다면 어떤 금전적 보상보다 보람된 게 아니냐고 식구들끼리 결론을 내린 터다. 황교수가 타는 차는 ‘30만km도 안 뛴’ 8년된 쌍용 코란도이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0평대 전세아파트다(그는 “내 집은 있다. 20평 아파트지만” 했다).
올해 안에 황교수는 복제소 20마리를 끌고 북한에 간다. “소만 가는 것이 아니다”고 여운을 남겼으나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88년부터 한달에 한차례씩, 한번도 거르지 않고 예불을 드려온 그에게 “전생에 소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 농을 던졌다. 그는 웃기만 했다.
▼황우석교수는…▼
▽1953년 부여출생
▽1972년 대전고 졸업
▽1977년 서울대 수의대 졸업
▽1979년 서울대 대학원 임상수의학 석사
▽1982년 서울대 대학원 임상수의학 박사
▽1984∼ 86년 일본 홋카이도대학 수의학부
객원연구원
▽1986∼ 현재 서울대 교수
▽1999년 대산농촌문화상(첨단농업기술진
흥 부문), 수의학술대상, 올해의 과학자
상 수상
▽2000년 홍조근정훈장 국회과학기술상 수
상
서울대동물병원장, 서울대수의과대 부학장, 대한수의학회 학술위원장, 한국수정란이식학회 학술위원장 역임. ▽현재 한국임상수의학회 한국발생생물학회 부회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운영자문위원, 일본수의학회지 학술위원 등. 특허 16건, ‘동물유전공학’ 등 저서 10편, ‘핵이식을 이용한 복제송아지 생산에 관한 연구’등 논문 1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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