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저변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에서 최근 국제 규모의 재즈 축제가 처음 열렸다.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제1회 싱가포르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그 것.
신흥 중심가인 ‘선텍 시티’(Suntec City) 내 국제전시장과 인근 세 곳의 야외 무대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해외 재즈 뮤지션만 1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 이들 중에는 ‘마스터’로 불리는 제임스 무디(테너 색소폰)를 비롯해 그래미상 수상자인 어니 와츠(테너 색소폰), 리 리트나워(기타) 등 미국의 거장 뮤지션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와츠와 리트나워는 19일 공연에서, 미리 정해놓은 레퍼토리를 무시하고 30여분간에 걸쳐 애드리브를 주고 받아 248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우리나라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초청 받은 이정식(테너 색소폰)도 20일 일본의 테루마사 히노(트럼펫)와의 협연에서 ‘Don’t do it’ 등을 통해 윤기 있는 음색을 과시했다.
야외 무대는 싱가포르와 인근 동남아 권 뮤지션들의 연주로 진행됐다. 주최측의 통제도 거의 없어 미국의 노장 뮤지션 엘디 영은 인근을 지나가다 갑자기 무대에 뛰어 들어 연주했다. 몇몇 관객들은 즉석에서 춤을 추거나 얼싸안고 포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축제는 ‘재즈’ 행사라기보다는, ‘관광 대국’ 싱가포르의 해외 관광객 유치 전략으로 보였다.
이번 축제는 싱가포르 항공(정부 지분이 전체의 57%)이 약300만 싱가포르달러(약 21억 원)를 투입해 행사 진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경비와 인력을 제공했다. 무대 인근에서 기자에게 1분 30초만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조차 싱가포르 항공에서 고용했을 정도. 물론 이번 축제를 겨냥한 패키지 항공권 상품도 한 달여 전부터 발매됐다.
행사장 선택도 이런 배경을 뒷받침한다. ‘선텍 시티’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들어선 동시에 신흥 정보통신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곳. 특히 이 곳을 둘러싸고 있는 5층 건물에는 정보통신업체들이 빼곡이 입주하고 있어 ‘수직 실리콘밸리’(Vertiacal Silicon Valley)로도 불린다. 누가 봐도 공연장 분위기는 그리 나지 않는다.
예술 총감독을 맡은 제레미 몬테이로는 이에 대해 “‘보트 키’(Boat Quay) 등 이전부터 재즈 공연이 열렸던 장소가 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사를 알리고 또 싱가포르를 보여주기 위해 이 곳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서는 31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이와 유사한 목표로 ‘싱가포르 아트 페스티벌’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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