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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꿈 장이

입력 | 2001-05-25 18:45:00


◇"우리것이 최고여!" 토종 지킴이들

“우리가 사용하는 면(綿)은 100% 수입산입니다. ‘Cotton USA(미국면)’표시는 품질을 보증합니다.”

패션잡지에서 흔히 보는 광고문구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아래의 21세기니 그럴 법도 하다. 외국옷감 사다 합성색소로 물들여 입고, 몸 아프면 양약 지어 먹고, ‘위 아 더 월드’ 하며 산다.

그렇지만 진짜로 우리네 삶이 ‘100% 수입산’일까? 마당 한켠에 목화 심어 실 뽑고, 옷감 지어 쪽으로 물들이고, 산으로 약초캐러 다니던, 땅과 밀착된 삶은 어차피 사라져버린 것인가.

이 책은 느리게 옛 방식대로의 삶을 밀고 가는 ‘토종문화’의 고집쟁이들을 보여준다. ‘꾼’편에는 심메마니, 송이꾼, 해녀 등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온 열네명의 토종지기가, ‘장이’편에는 무명장이 숯장이 대장장이 등 전래의 수공업 기술로 솜씨를 드러내온 열여섯 사람의 모습이 실렸다. 저자와 사진가가 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취재에 공을 들였고, 생생한 컬러사진 400여장을 곁들였다.

심메마니 홍종덕과 김영재. 산삼을 보는 순간에는 ‘번쩍’ 하는 기를 느낀단다. 꿈을 잘 꾸는 것도 중요하다. 산에 눈이 하얗게 덮인 꿈을 꾸면 설악산, 사방에 절이 보이면 오대산에서 심을 본다. 어떤 심메마니들은 아낙네의 ‘개짐’을 지니고 다닌다. 산신이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나.

이렇게 정성을 들여도 3년 심을 못 보는 때도 있다. 값싼 외국 삼이 들어오면서 삼 값도 예전만 못하단다.

옷감에 쪽물 들이는 쪽장이 정관채. 육이오 후 미군바지와 화학염료가 들어오면서 한때는 토종 참쪽이 소멸돼버리기도 했다. 간신히 종자를 찾아냈지만 참쪽은 내성이 약해 왜쪽을 주로 쓰고, 대신 마당 한쪽에 참쪽을 곱게 키우며 맥을 유지하고 있다. 풀빛 쪽이 발효와 침전을 거듭해 고유한 빛을 내기 위해선 물 온도, 쪽풀 성장상태, 잿물 양 등 하나라도 어긋나선 안된다.

매사냥꾼 전영태. “옛날에는 이게 국기(國技)랑게. 군왕도 허고 서민도 허고. 사람들은 고함지르고 매는 날아가고, 그런 구경이 없었어….” 옛일을 회상하는 그의 주름진 눈가가 말해주듯, 이들의 삶은 ‘주류’에서 밀려나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마저 퇴장하면, 이 땅에 뿌리박은 삶을 풍요롭게 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지도 모른다.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돈도 안 되지…. 그래도 마 재밌어서 이래 하고 있어요.” 아직도 마당에 목화를 심는 무명장이 백문기의 독백.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급을 다룬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다양한 사진으로 삶의 모습을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용한 지음 심병우 사진 각권 240쪽 1만2000원 실천문학사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