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허풍-위선으로 가득찬 위대한 말로의 전설
프랑스 출판계는 역사적 인물들의 탄생과 사망일을 놓치지 않고 출판과 연결시키곤 한다. 한편에서는 이런 출판이 단지 책을 팔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며 과거를 우려내야 하는 현대의 지적 침체기를 나타낼 뿐이라고 조소한다. 하지만 경의와 비판의 시선으로 끝임없이 과거를 재조명하는 프랑스 문화의 한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프랑스의 서점가에는 자크 라캉(1901∼1981)과 앙드레 말로 (1901∼1976)의 탄생 100주년과 관련된 새책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동시대인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다간 이 두 사람은 지난 한 세기 프랑스 지성을 사로잡은 대조적인 두 사상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버금가는 라캉은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꼽힌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에 언어학을 도입해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복잡한 심층구조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며 정신분석학을 발전시켰다.
말로는 인간의 존엄성은 한 개인의 하찮은 심적 ‘비밀더미’에 지배되지 않고 세계의 운명을 변형시키는데 있다고 외친 인물이다. 그는 파시즘에 대항한 공산주의자이자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말기에는 드골 대통령 치하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며 행동가로 활약했다. 그리고 인간 운명에 대한 그의 투쟁과 성찰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확인한다.
그런데 지난달에 출판되어 요즘 서평가들의 호평 1위에 오른 올리비에 토드의 전기 ’앙드레 말로, 일생’은 세기의 격동을 함께 한 말로의 이 역동적 생에서 그의 ’비밀더미’를 파헤쳐 관심을 끈다. 소설가이며 리포터로 알려진 저자는 ’자크 브렐’ ’알베르 카뮈, 일생’ 등의 전기를 최근에 발표했다.
그는 증언과 미간행 공문서 및 역사기록 등을 토대로, 말로 신화에서 진실과 허구를 밝힌다. 즉 그의 변신술과 거짓말 습성이 그를 전설화했다는 것이다.
말로가 어린시절 신경질환을 앓았으며, 아버지의 대단한 허풍을 이어받았고, 자신의 이력에 사실이 아닌 동양어대학 수료를 기록하고, 캄보디아에서 조각품을 도둑질하고 이를 ‘채취’로 표현하며, 중국 국민당 요원 및 항독 지하운동 지휘자를 사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드는 이 형사 수색을 통해 말로가 자신이 떠돌게 한 헛소문에 그대로 잠들지 않고 거짓을 좀더 위대한 대의의 발판으로 삼아 행동으로 실천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말로가 그의 작품들을 능가하는 좀더 진실한 삶을 창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토드의 전기에 대해 작가의 진실은 삶의 찌꺼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찬탄을 받으며 한 세기를 부둥켜 안은 말로의 작품 속에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세상의 소리에 무관하며 절대에 취해 살다간 말로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프랑스인들의 관심 대상이 될 것이다.
올리비에 토드 지음 갈리마르출판사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