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의 날에 장미 스무 송이를 들고 교정을 활보하는 청춘들을 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연 저토록 축복 받을 일일까요? 물론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 미성년의 시절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만큼 많은 책임과 무거운 살이(生)의 짐을 지게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해도 그들의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겠지요. 나이는 성년에 이르렀으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암담하고 답답한 나날일 터입니다. 과연 저 괴물 같은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불면과 만취의 밤이 이어지겠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을 타락이나 병듦으로 해석하는 노래들이 있지요. 성시현이 만든 '꿈결 같은 세상'이란 노래가 언뜻 떠오릅니다. "세월이 날 철들게 해 / 시간이 날 물들게 해 / 안돼 안돼 안돼 / 난 변치 않을래 / 힘없는 어른들처럼 / 난 믿고 살 테야 /꿈결같은 세상" 여기서 철이 든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의 더러운 세상에 물이 든다는 뜻이겠지요..
동물원의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란 노래도 마찬가집니다. '이젠 조금씩 체념하며 사는 것을 배워 가고 있어 /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란 부분을 읊조릴 때면 늘 가슴이 시립니다. 어른의 삶이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들을' 잃는 것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가 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란 것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성시현과 동물원의 노래에는 순수를 간직하고픈 작은 바람과 그 바람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 속에서 점점 꿈을 잃어버리고 체념에 익숙해져 가는 바로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백전백패의 삶이지요.
클릭B의 흥겨운 노래 '백전무패'를 자주 듣습니다. 멜로디도 좋고 맴버들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무대 매너도 뛰어납니다. 성년에 이른 김태형과 우연석을 비롯하여 이제 곧 성년에 이를 맴버들의 세상을 향한 고민이 진솔하게 담겨 있기에, 흔하디 흔한 사랑타령과는 구별되지요.
그러나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백전무패와 백전백패 사이를 단숨에 넘나드는 부분에서 어떤 아찔함이랄까 막막함을 느낍니다. '쉬운 일에서도 쓰러지네 무슨일이든지 백전백패 이 세상에 온 게 후회되네'에서 '난 아직 끝난 것이 아니야 매일 쓰러져도 난 다시 일어나 난 세상의 끝에서 이제 저하늘 끝까지 나는 날아갈 수 있어 너 겁먹지 말고 일어나 세상 앞에서 너 두려워 울지마 너 모든 걸 다 걸고 싸워 한번 부딪쳐봐 이제 세상을 가져봐'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물론 이런 희망은 건전하고 아름답겠지만, 백전백패의 삶이 단숨에 백전무패의 삶으로 날아오르기란 지극히 힘들겠지요.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차라리 백전백패와 백전무패의 '사이'는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나의 삶은 백전백패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다시 일어서는 패배자의 다짐과 의지 말입니다. 백전무패라고 자신을 부풀리거나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노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클릭B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클릭B의 '백전백패'도 좋지만, 백전백패하는 제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 저는 아직도 강산에가 직접 노랫말을 쓴 흘러간 이 노래를 듣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
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해도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 있으니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 있으니
어려워 마 두려워 마
아무것도 아니야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거야
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
당당히 네 꿈을 펼쳐 보여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 있으니
--강산에, '넌 할 수 있어'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