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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의일본TV읽기]역사교과서 토론 씁쓸한 뒷맛

입력 | 2001-05-28 18:18:00


25일 밤 TV아사히의 토론프로 ‘아침까지 생방송’은 재일 한국인을 꼬박 밤새우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밤 새벽 1시반부터 세 시간 동안 생방송 토론으로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최근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비화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다뤘다.

‘아침까지 생방송’은 TV아사히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10년도 넘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외국인의 지문날인,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참정권문제, 독도영유권 주장, 한국의 일본문화개방 등에 대해 토론을 가졌다.

이 프로가 10년도 넘게 시청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격렬한 토론 때문이다.

얼마 전 이 프로그램에서는 재일 동포의 차별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다. 7, 8명의 재일 동포와 같은 수의 일본인들이 나와 격론을 벌였는데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과열됐다. 토론자로 나온 일부 일본인이 차별을 받게끔 행동하는 재일동포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토론장은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그런데 토론장에 재일동포 출신의 유명한 레슬링 선수 조슈리키(長州力)가 큰 소리로 항의하며 들어왔다. 그는 집에서 이 프로를 보다가 재일동포들에게 문제가 더 있다는 말에 분을 삭이지 못해 방송사로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차별 당한 경험을 예로 들며 조목조목 일본인 토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요란하게 터졌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토론은 그 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교과서 왜곡의 주역인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출연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청을 높이며 “왜 한국교과서에 베트남 군 위안부 얘기는 싣지 않느냐”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 증거가 없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반면 재일동포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만이 그들의 억지 주장에 차분하고도 논리 정연한 반박으로 간신히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지한파로 다른 일본 교수들과 함께 교과서 왜곡이 심각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대한 ‘새로운 교과서…’측의 맹공격이었다. 그들은 조총련 재일동포들의 북한 귀국을 독려한 한편, “84년 아웅산 폭발 사건은 한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발언을 한 와다 교수의 행적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교과서왜곡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강상중 교수는 아래와 같은 비판으로 ‘새로운 교과서’측을 쩔쩔매게 만들었다.

“당신들은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콤플렉스를 아시아를 통해 치유하려 한다. 왜 당신들은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린 핵폭탄에 대해 교과서에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는가? 따라서 당신들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행위는 곧 콤플렉스를 상쇄하기 위한 마스터베이션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이날 토론은 결론을 내기보다 유야무야 슬쩍 넘어가려는 일본의 문부과학성과 시종일관 의기양양해 하는 ‘새로운 교과서…’ 측의 기세가 어울려 몹시 씁쓸한 느낌을 줬다.

yjaes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