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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신한국당 시월회 정풍파동]'YS레임덕' 본격화

입력 | 2001-05-28 19:03:00


민주당 일부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 파동을 지켜보는 한나라당의 재선급 이상 의원들은 97년 초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소장파 의원들이 주도한 ‘시월회 파동’을 떠올린다.

‘시월회 파동’은 96년 12월말 노동법 개정 날치기 사건과 97년 1월 한보사건으로 여권의 국정운영능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신한국당의 초선의원 35명으로 구성된 시월회가 집단행동에 나섰던 사건.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의원과 홍준표(洪準杓) 전 의원 등이 주도한 시월회는 97년 2월3일 비상총회를 열어 △한보사태와 관련한 당의 자체 정화 △노동법 기습처리와 관련한 책임자 문책 △대통령 후보 조기가시화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나아가 여권 수뇌부 인책론을 제기하면서, 청와대는 정권 재창출 문제에서 손을 떼야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파동의 발단은 다르지만 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 참모진과 동교동 구파를 겨냥해 당정 쇄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위기 수습을 위해 조기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4년여 전의 상황과 흡사한 점이 많다.

신한국당의 ‘시월회 파동’은 이회창(李會昌) 당 대표와 고건(高建) 국무총리 기용으로 겨우 가라앉았지만, 이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레임덕현상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신한국당 내의 대선후보 경쟁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번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 파동을 어떻게 수습할지는 미지수지만 민주당 또한 당내 세력 분화와 함께 대선후보 경쟁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대목은 ‘시월회 파동’ 때 신한국당 소장파 의원들의 당 쇄신요구 파문이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로까지 불똥이 튀었다는 점.

이번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 파동을 주도한 천정배(千正培) 의원을 비롯한 당시 국민회의 소장파 의원 7명은 ‘시월회 파동’이 있은 한 달쯤 후인 97년 3월17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 “가신정치, 측근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비난이 야당에도 쏟아지고 있다”며 당 개혁을 건의했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 사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