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중국을 다녀온 사신 일행의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의 집대성판인 ‘연행록전집’(전 100권)이 학계에 선보이기까지는 동국대 국문학과 임기중 교수의 26년간에 걸친 연구와 노력이 숨어 있다.
‘연행록전집’에 실리는 연행록 관련자료들은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 내역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들이다. 이에 따라 이 전집은 동아시아 교섭사 및 문화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행록전집’ 발간의 가장 큰 학술적 의의는 존재조차 몰랐던 연행록들을 발굴해 한 곳에 모았다는 점이다. 전집에 실리는 연행록들은 한글로 된 것과 한문으로 된 것이 섞여있다. 앞으로 이들을 정밀 분석하면 중국에 파견됐던 사신들의 시기별 특징뿐 아니라 중국이 조선사신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사신들이 중국 문물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中천주교 초기 모습 수록
실제로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세 차례의 중국 사행(使行)을 통해 중국에서 여러 나라 사신들과 교제하면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는데 이번에 그가 쓴 ‘안남사신창화문답록(安南使臣唱和問答錄·1597년작)’의 발견으로 안남(安南·베트남)사신과의 교제 내역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당시 안남에서 이수광의 한문 저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그 전래 경로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시 됐으나 이번에 ‘안남…’ 발견으로 이수광이 중국에서 만난 안남 사신에게 자신의 저서를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연행록에는 천주교가 중국에 정착 단계에 들어선 상황이 묘사돼 있을 뿐이었으나 1721년 유척기(1691∼1767)가 지은 ‘연행록’이 발견됨에 따라 중국의 천주교 전래 초기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영조의 왕세자 책봉을 허락받기 위해 주청사 서장관 자격으로 중국에 갔던 유척기는 처음 접한 성모 마리아상에 대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가 돈다”고 기술했다. 유척기는 천주교회인 천주당의 내부 장식과 외부 전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했다.
◇'제2 박지원'등장 가능성
임 교수는 “지금까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1737∼1805),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등 몇몇 학자가 지은 소수의 연행록만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아 왔지만 이번 전집 출간을 계기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면 제 2, 제 3의 박지원이 새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연행록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75년. 한국의 고전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문화의 영향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연행록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각종 문헌에 나타난 연행 기록을 조사한 뒤 당시 사절단에 포함돼 있었던 인물의 문집을 샅샅이 뒤지는 등 26년간 각종 문집과 단행본, 개인소장본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임 교수는 “이런 연구는 ‘미련한’ 구석이 있어야 해낼 수 있다”면서 자료 수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일부 대학에서는 도서관에 보관된 고문서들이 귀중본이라는 이유로 대출과 복사는 고사하고 자료를 보여주는 것 조차 꺼렸다. 복사를 허락한 대학도 그 댓가로 ‘연행록전집’이 출간되면 100권 한 질을 기증하라고 요구했다.”
임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150여종의 자료들을 처음 발굴했지만 연행록에 대한 단편적 사실 보다 연행록의 전모를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그때 학계와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임 교수는 그동안 연행록 관련 자료 수집에 치중하느라 내용 분석 및 연구에는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연행록전집’ 발간을 위해 들인 임 교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