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 않지만 꾸준하게 관객이 몰리는 연극이 있다. 서울 동숭동 '이랑씨어터'에서 무기한 공연 중인 '용띠 위에 개띠'(이만희 작).
이 극장은 개관 1주년을 맞은 지난 26일까지 일년 내내 이 작품을 공연해왔다. 이 작품은 97년 8월 초연 뒤 총 1306회 공연에 8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장기 공연이라고 해도 '3개월 고개'를 넘지 못하는 요즘 분위기를 고려할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작품은 52년생 용띠인 만화가 나용두와 58년생 개띠인 잡지사 기자 지견숙이 그려내는 코미디. 내기에서 이기는 사람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규칙에 따라 결혼한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겪는 애환을 담았다.
주인공 용두 역 외에도 연출, 극단과 극장의 대표로 1인4역을 맡고 있는 이도경(49)은 "사연을 말하자면 소설 한 권"이라고 말했다.
이도경은 초연 때부터 혼자서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지견숙 역에는 현재 박은주까지 4명의 배우가 등장했다.
'용띠…'는 장기공연 중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지난 1월에는 박은주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공연이 중단될 상황이었지만 응급실에서 머리를 꿰매고 다시 무대에 섰다.
공연이 중단된 사고는 지난 2월2일 예상 밖으로 용띠 에게서 일어났다. 이도경이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것.
"병원에서 눈을 뜨보니 의사가 내게 40대 돌연사도 모르느냐고 마구 야단치더군요. 그렇지만 다음 날 곧 무대에 섰습니다. 난 더블 캐스팅이 싫어요. 배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 없이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배우는 공연 없으면 병이 나요."
연극계에서 이도경은 '장기 공연' 전문 배우로 불린다. 92년 '불 좀 꺼주세요'에서도 주인공의 친구, 떡집 주인 등 숱하게 옷을 갈아입는 1인 다역을 맡아 1033회를 출연했다. 그 사이 경북 경주의 집에 불이 나 홀랑 타버렸고 부모상을 잇따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 모두가 팔자란다. 딸을 동숭동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켜놓고 그 옆 극장에서 관객을 웃기려다 눈물이 핑 돌던 때도 있었다.
이도경은 "'이랑 씨어터'가 '용띠 위에 개띠'로 1년을 버틴 것은 좋은 작품만 있다면 연극계의 불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산 증거"라고 말했다. 공연은 수∼금 오후7시반, 토 오후4시반 7시반, 일 오후3시반 6시반. 1만∼1만5000원. 02-766-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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