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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박주헌/기초학문 선택하면 혜택주자

입력 | 2001-05-30 18:20:00


기초학문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대학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사실 기초학문의 위기는 1990년대 중반 학부제가 시행될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대학에 입학해 여러 학문을 접해본 뒤 전공을 선택하도록 한 학부제는 교육의 시장원리 도입이라는 논리로 옹호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제가 전공별로 정원을 정해 놓고 학생들의 선택을 강요했던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제도이긴 하지만 시장원리에 부합한다는 논리는 억지이다. 오히려 시장실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원리는 상품의 비용과 편익이 거래에 참여하는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모두 귀속될 때 올바르게 작동한다. 비용이나 편익의 일부가 거래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이전되면 소위 외부효과에 의한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외부효과가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상품 거래량의 과부족이 발생한다. 비용이 제3자에게 전가되는 음의 외부효과가 생기면 과다하게 거래되고, 편익의 일부를 제3자가 누리는 양의 외부효과가 발생하면 과소하게 거래된다.

따라서 외부효과에 의한 시장실패가 발생하면, 정부는 조세나 보조금을 이용해 시장을 조정해 문제를 해소하게 된다. 즉 음의 외부효과가 발생하면 조세를 부과해 가격을 올리고 양의 외부효과가 발생하면 보조금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 바로 이것이 외부효과가 있는 상품거래에 적용되는 시장원리이다.

기초학문은 양의 외부효과를 갖는 대표적 학문 분야이다. 철학 수학 논리학 등 기초학문은 응용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양의 외부효과를 갖는다. 기초학문은 나무의 뿌리와 같은 반면, 응용학문은 줄기 끝에 매달린 열매와 같다. 탐스러운 열매가 목적이라 할지라도 열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학문의 수요자인 학생들이 응용학문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가격을 지불할 바에야 남 좋은 일만 하는 기초학문을 선택하는 것보다 달콤한 열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응용학문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별로 등록금도 차등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효과를 무시한 채 사이비 시장원리를 고수하면 응용학문으로 수요가 과다하게 몰리고 기초학문을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려면 제대로 도입하자. 기초학문이 갖는 양의 외부효과를 인정한다면 보조금을 줘서라도 기초학문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기초학문을 선택한 학생에게는 등록금 면제 혜택이라도 주고, 교수들에게는 공공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시장원리는 수요와 공급이 자유롭게 결정될 뿐만 아니라 가격이 적정한 수준에서 결정될 때 제대로 작동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초학문의 발전 없는 응용학문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다. 학부제를 먼저 도입한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응용학문 분야는 모두 전문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하고 학부는 기초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주헌(동덕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