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몇 년 앞둔 시점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벌레 가 나타났다.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Millenium Bug)' 는 2000년 1월 1일 0시부터 전세계의 컴퓨터를 정지시키고 오작동을 유발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공항의 업무가 마비되고 병원의 수술기기가 정지되는 등 새 천년은 대재앙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예언(?)도 있었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대비를 철두철미하게 했던 탓일까? 다행히도 염려했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류가 새로운 천년을 맞은 지도 벌써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시장경쟁 상황 점차 퓨전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듯한 '2000년 문제' 는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주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문명의 이기(利器)와 그것을 생산하는 기술에 우리가 점차 속박되어 버리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기술에 대한 무지(無知)는 필요 이상의 엄청난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케 할 수도 있다는 점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변화에 대한 전략적 접근으로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퓨전 시대는 시대를 주도하는 뚜렷한 기술이 나타나기 전의 과도기적 시대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보아 지금까지 세 번의 퓨전 시대가 있었다. 18세기 중반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농경사회로부터 공업화사회로 바뀌던 시대였던 제 1차 퓨전 시대가 있었으며, 1950년부터는 정보화 혁명으로 공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바뀌던 제 2차 퓨전 시대가 있었다. 현재는 정보화시대가 지속되면서 인터넷을 비롯한 신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등 혁신 기술의 시대가 공존하는 제 3차 퓨전 시대라 하겠다.
이러한 퓨전 시대의 특징을 반영하듯 최근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칭하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지식기반경제, 네트워크경제, 디지털 경제, 정보경제, 전자경제, 무게 없는 경제 등 우리가 요즘 각종 매체를 통하여 듣는 다양한 용어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확산되고 있는 동시에 기존 기술간 또는 신기술과 기존 기술간의 융합화도 일어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도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특히 경쟁구조, 경쟁방식 등이 전통적인 경제 패러다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기술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기술개발에 따르는 위험과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기업간 협력과 기업인수합병이 늘어나고, 일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의 시장집중이 점차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버마켓과 같은 오픈 시스템의 발달로 새로운 기업들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여 기업간 경쟁이 심화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는 상반되는 현상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시장경쟁 상황도 점차 퓨전화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 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통적 가전업체인 일본의 소니(SONY)는 자신들의 강점인 가전 생산기술에 인터넷을 접목시키는 퓨전 전략으로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기업의 이러한 퓨전 전략은 기업을 인터넷이나 전자상거래 등을 활용하는 온라인 기업과 이를 활용하지 않는 오프라인 기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이 아닌 온·오프라인의 조화와 접목을 통하여 기업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하는 전략적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다.
▼차별화된 전략 있어야 재도약▼
퓨전 경제의 환경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선진기업들은 혁신기술을 활용하여 전통적인 제품 생산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며 다른 기업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전략을 가진 사업체로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여 나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스스로가 강점이 있다고 여기는 전통적인 생산기술과 경영기법, 경쟁력 요인 등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그 위에다 새로운 혁신기술과 신경영기법을 접목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기업들도 재도약의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배광선(산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