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투톱인 김도훈과 최용수는 거의 슛할 기회가 없었다. 적진에 고립돼 보급이 완전히 끊겼다. FIFA보고서의 지적과 같이 한국은 최종 수비수 최영일-홍명보-이민성에다 미드필더인 서정원-유상철-김도근-이상윤-최성용이 모두 수비수가 되었다. 한마디로 보병만 있지 기병은 하나도 없이 싸운 것이었다. 결과론이지만 어차피 0-5로 질바에야 한국도 유상철 최성용 등이 적극적으로 네덜란드의 배후를 노렸다면 그렇게 큰 점수차로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최상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에 있는 것이다. 칸나에 전투에서 보듯이 수비는 숫자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본 한국축구
①로마군을 무너뜨린 한니발의 기병
②4-4-2의 성공조건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세계를 정복한 것은 바람같은 기동성에 있었다.속도전에서 이겼기 때문에 자기들보다 수백배나 큰 세력을 지배할 수가 있었다. 칭기즈칸이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 몽골인구는 고작 100만명. 이중 칭기즈칸의 기마군단은 20만명. 칭기즈칸은 이들로 약 1억
여명을 지배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당시 유럽기사단의 군장무게는 70㎏. 그러나 몽골기마군은 쇠가죽 갑옷에 칼 화살 망치가 무기의 전부였다. 그만큼 움직이기에 가벼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빠른 기병만 가지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빠른 기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병과 보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즉 축구의 경우 공격수가 때로는 수비수가 되는가 하면 오른쪽 백과 왼쪽 백이 순식간에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최종 수비수와 최전방 공격수가 순간적으로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탈축구를 하는데는 4-4-2 포메이션이 가장 유리하다. 4-4-2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경기중에 4-4-2는 3-5-2나 4-2-3-1 혹은 4-3-3 등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바뀔 때 얼마나 유기적으로, 균형을 맞춰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팔색조처럼 바뀌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럴려면 역시 체력+스피드+전술이해력을 갖춘 선수가 필요하다.
히딩크감독이 한국선수들의 포지션을 자주 바꿔보는 것도 그 선수의 전술 소화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틈만나면 "4-4-2는 기본 시스템일 따름이다. 고정된 것이 아니다. 왜 한국축구팬이나 언론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를 일약 3위에 올려놓은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감독(현 이란감독)도 "현대축구에 4-4-2다 3-5-2다 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격-수비 간격을 30m로 유지하며 70년대 네덜란드 토탈축구처럼 필드플레이어 전원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자
유자재로 포지션을 소화해 내는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4-4-2는 전투대형의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4-4-2의 '자유정신'에 배치되는 결과를 낳는다. 4-4-2는 수시로 변신 하기에 가장 좋은 포메이션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나그네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배를 잊듯이 4-4-2를 알고나면 4-4-2를 잊어야 한다. 물처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병력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른 전투장면을 통해 알아보자. 이번 전투는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했던 전투다. 왜 패했을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 유명한 '자마전투'를
발췌 재구성한다.
기원전 202년 가을. 한니발 나이 마흔 다섯. 스물아홉살 때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에 진격한 한니발은 그로부터 16년 동안 전투마다 승승장구하며 이탈리아반도를 쑥밭으로 만들며 돌아 다녔다. 그러나 그런 그도 적의 심장인 로마까지는 아직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로마에는 한니발 못지않게 뛰어난 33세의 젊은 스키피오가 버티고 있었다. 스키피오는 칸나에전투에서 한니발에게 패배해 간신히 도망갔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로마군은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한니발에게 수없이 깨지면서 '한니발의 보병과 기병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적진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전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로마 주력군인 '중무장보병 중심의 전술'도 이제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 아니 한니발보다 더 기병의 중요성을 알고 그를 활용했다.
장소는 북아프리카의 자마.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보병 4만6000명에 기병 4000명. 그리고 코끼리 80마리. 그 누구보다도 기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한니발이지만 그가 끌어 모을 수 있는 기병은 4000명에 불과 했다. 이에비해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은 보병 3만4000명
에 기병 6000명. 총전력으로는 한니발이 우세하지만 기병만 보면 로마가 우세했다. 보병대 기병의 비율로 봐도 한니발군이 11대1인 반면 로마군은 6대1. 기병이 부족한 한니발은 그가 장기로 하는 기동력전술을 구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한니발은 맨 앞에 코끼리 80
마리를 배치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가장 전력이 약한 혼성용병 1만2000명, 그 바로 뒤에는 조금 강한 용병 1만9000명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옆에 기병 2000명씩을 각각 배치했다. 그리고 그 뒤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자신의 정예병력 1만5000명을 대기 시켰다.
한니발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저자 시오노나나미는 이를 간단히 헤아려낸다. 즉 80마리의 코끼리를 로마군 중앙으로 돌진시켜 적진보병대를 혼란에 빠뜨린 다음 둘째 셋째 용병대열을 투입한다는 것. 이 상황에서의 양측 병력 수는 한니발 용병 3만1000명에 로마군 3만4000
명. 비록 로마군이 우세하게 전투가 진행되더라도 로마의 주력인 중무장보병은 적잖이 지칠 것이고 이때 한니발은 후방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예군 1만5000명을 전격 투입해 전투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적보다 숫자가 부족한 기병은 어떻게 운용하려 했을까. 한니발은 평소엔 기병을 활용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날만은 로마 기병에 비해 숫자가 부족한 상황을 감안해 나아가 싸우게 하기보다는 아군의 보병옆에 바짝 붙어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결국 한니발은 용병들은 미끼로 쓰고 기병들은 현상유지를 해준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정예 보병으로 승리를 해보겠다는 고육책을 쓴 것이었다. 용병들은 로마군을 지치게만 하면 모두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축구로 이야기 하자면 한니발은 발빠른 양 날개를 접고 최종 수비진으로 적의 최전방을 기습 공격 하겠다는 대담한 작전을 짠 것. 오늘날의 역사가들도 기병이 약한 한니발로서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최선의 작전이었다고 평가한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는 어떤 전술을 썼을까. 물론 예전처럼 중앙에 소대(60명∼120명)별로 이뤄진 중무장 보병을 3열종대로 배치했다.그러나 평소와 달라진 게 있었다. 중무장보병 소대별 간격을 예전과 달리 밭고랑처럼 널찍하게 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평소 흐트러
진 상태의 유격대로 사용하던 경무장 보병을 소대를 구성해 일사분란하게 나눠 메웠다. 먼데서 보면 로마군은 언제나의 전투처럼 마치 '촘촘한 일자형의 직사각형' 같이 보였다. 이어 스키피오는 양쪽에 숫자적으로 우세한 기병 6000명을 반으로 나눠 날개를 삼았다.
싸움이 시작되자 한니발 코끼리군의 진격과 동시에 로마군 기병들이 돌격했다. 먼저 코끼리군이 로마군에 다가오자 갑자기 로마군 사이 사이에 코키리가 지나갈수 있는 널찍한 길이 생겼다. 로마의 경무장보병들이 갑자기 썰물처럼 중무장 보병 틈새로 들어가 버린 것. 코끼리
는 전차와 달리 일단 돌진하기 시작하면 도중에 멈추기 어렵다. 한니발의 작전은 여기서부터 스키피오에게 완전히 허를 찔렸다. 한니발의 코끼리부대는 로마군을 한참지나 간신히 섰지만 그때는 이미 로마군 경무장보병들이 나팔과 꽹과리 등으로 소음을 내며 투창을 던져오고 있었다.
이어 중앙에서는 로마군 2만8000명과 한니발의 용병 3만1000명이 맞붙었다. 한니발군이 숫자는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용병에 불과 했다. 역시 전투력은 로마군이 우세했다. 점차 한니발군이 밀렸다. 그리고 그때쯤엔 이미 한니발 용병보병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양쪽날개
기병들은 숫적으로 우세한 로마기병들에 의해 압도 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한니발군의 양옆구리가 완전히 비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프랑스월드컵 한국-네덜란드전에서 유상철-최성용의 양 윙백이 네덜란드의 양 날개에 묶여 수비만 하던 것과 흡사하다.
이때 스키피오는 로마군 중무장 보병에게 정면과 적의 양옆구리 셋방면에서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한니발의 용병 3만1000명은 거의 죽거나 도망쳤다.
물론 아직 한니발의 정예군 1만5000여명이 남아있다. 후방 200미터쯤에 대기하고 있던 한니발군이 로마군을 향해 진격하자 갑자기 로마의 스키피오장군은 지금까지 종대로 싸우고 있던 로마군에게 활처럼 움푹 패인 형태의 횡대로 전투대형을 바꾸라고 명령했다.
축구로 말하자면 4-4-2 대형을 4-2-3-1 아니면 4-1(앵커맨)-3-2 포메이션 쯤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한니발이 칸나에전투에서 로마군을 포위섬멸할때 써먹었던 작전과 흡사하기도 하다. 스키피오는 숫자적으로 우세한 보병과 기병을 활용해 날개가 꺾인 적을 세 방향
에서 포위해 섬멸하려고 한것이다. 결국 한니발의 1만5000 정예군도 전멸했다. 한니발 자신도 기병 몇기만 거느린채 도망쳤다. 로마군 전사자는 1500명. 스키피오의 완벽한 승리였다.
결국 전투중에 병력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활용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다. 물론 여기엔 로마 기동력이 우세하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월드컵본선무대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다. 5회진출에 14전 4무10패. 로마는 16년동안 한니발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결국 그의 전술을 벤치마킹해 그를 이길 수 있었다.
한국축구는 52년 스위스월드컵출전이래 무참히 깨지는 동안 무엇을 벤치마킹 했을까.
알렉산드로스는 전쟁터에서 항상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전투는 격동의 상태다. 전쟁터에서의 모든 행위는 격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투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수동적이기만 하면 죽어도 이길 수 없다. 지더라도 주도권을 잡으려고 해야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 공격적이어야 이길수 있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너무나 수세적이었다.
mars@donga.com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본 한국축구
①로마군을 무너뜨린 한니발의 기병
②4-4-2의 성공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