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아광장/이규민]너희가 경제를 아느냐

입력 | 2001-06-01 18:28:00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작년에 벌어들인 돈은 상금과 광고료를 합해 5300만달러(약 689억원)였다. 1년 동안 공식대회에서 친 총 타수(打數)가 5181타였고 상금이 918만달러였으니까 우즈는 골프채를 한번 공에 댈 때마다(설혹 그 샷이 실수였다 하더라도) 우리 돈으로 꼬박꼬박 230만원씩 소득을 올린 셈이다. 같은 대회에 출전했던 하위권 선수들 중에 한달 수입이 우즈의 한타 값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분석은 스포츠 세계의 소득불평등이 어느 정도로 극심한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 하나. 미국 프로농구의 신화적 존재 마이클 조던이 전성기 때 받은 연봉은 3000만달러를 넘었지만 당시 같은 팀에는 연봉이 그의 100분의 1조차 안 되는 선수들이 태반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이들보다 100배나 더 득점했거나 또는 그 비율만큼 기량에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선수들은 소득평등을 주장하기보다 팬들이 만들어준 냉엄한 현실에 승복하는 프로 세계의 관행을 택한다.

▼성패는 소비자 선택에 따른 것▼

그러나 스포츠계의 연봉차이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보여주는 소득의 격차에는 견줄 바가 못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돈은 지구 위에서 소프트웨어로 밥 먹고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수입보다 많고 미국인 전체의 하위 49%가 갖고 있는 재산을 몽땅 합한 것보다 더 많다. 시장에서 승리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득구조는 이처럼 대단히 비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이 유권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존재의 가치가 적자생존의 시장법칙에 적응했느냐 못 했느냐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1인1표 정신의 민주주의와 이 체제를 신봉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외견상 이렇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상반된 시스템처럼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날카롭게 분석한 미국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도 “자본주의는 경제적 과정이 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어떤 특수한 결과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관해서는 모른 체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해 해명될 수 없는 모순이 시장경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시장참여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민주적 제도임에 틀림없다. 소득의 크기는 시장 안에서 누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고 얼마나 큰 행운을 만났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소비자 구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고 효율적인 판매망을 구축해 소비자에게 더 가깝게 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소주시장이건, 자동차시장이건 혹은 신문시장이건 각각의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춘 상품을 다수의 소비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에 아직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대체할 만큼 우월한 제도가 없다는 전제 아래, 이 소중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승부에 대해 복종하는 정신이다.

자사제품이 안 팔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인데 제품을 더 잘 만들려고 노력하기 보다 외부의 힘에 의존해 시장의 구조를 바꾸려는 회사가 있다면 그런 회사나, 작용하는 힘이나 모두 소비자들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승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되면 시장은 게임의 룰을 잃게 되어 승자는 더욱 강해지고 패자는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참여자는 승부에 복종해야▼

요즘 기업인들의 심사가 편치 않다. “돌아가는 꼴들을 보면 애써 투자하고 어렵사리 돈벌려는 마음이 싹 가신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경제 주체들이 ‘가진 자가 고통을 받아야 하고 시장의 승리자가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느낀다면 시장경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사치일 뿐이다.

그런 분위기 조성에 정부가 앞장서거나 혹은 일익을 하고 있다면, 시장참여자들은 비록 자신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빚어지는 일이라 해도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정적 칼날이 언제 어느 시장의 승자에게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기업인들이 느끼고 있다면 이 나라 경제는 과연 장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