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제목은 ‘중국이라는 시좌(中國という視座)’. 여기서 시좌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이 책은 바로 일본에서 중국학 연구가 서구 인문학의 관점에 의존하던 경향을 벗어나서 새롭고 독자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주희에서 등소평까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일본 도쿄(東京)대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토 타카유키(伊東貴之), 무라타 유지로(村田雄二郞) 등 도쿄대 출신 학자들의 공동 저작이다.
중국학에 대해서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근대’, ‘자유’, ‘개체’, ‘내면’ 등을 중심으로 삼는 서구 인문학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중국 문화의 구조 양식, 그 자체의 민족적 독자성에서 나타난 실상 그대로 중국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은 보다 분석적이면서도 종합적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 핵심적 방법은 다름 아닌 ‘시스템’이란 개념에서 시사된다. 번역서의 제목인 ‘예치(禮治) 시스템’은 이 저서의 핵심 주제어이기도 하다.
예치 시스템이란 근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중국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했던 주축이 곧 예치의 방법이었다고 파악하는 것이고, 특히 중국사회를 도덕질서 공동체로서의 정치와 사회가 도덕과 유기적으로 얽혀서 운영되어 온 것으로 바라보자는 관점을 제시하는 개념이다.
이 관점은 철학과 윤리는 물론 정치와 사회까지 포괄할 뿐 아니라, 근세 중국(송나라)으로부터 최근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회의 전개를 함께 관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담론의 체계를 시사한다.
역자들이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예치 시스템이라는 개념 혹은 연구방법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다. 더구나 예치의 개념을 인치(人治)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한편, 근세 중국의 주자학의 가부장제에서 그 연원을 찾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공산당과 마오에 의한 국가 통치권자의 유사 가부장제적 인치로 이어짐을 입증하면서, 현대에 보편화한 서구적 의미의 법치에 대해 지니는 장단점을 논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저자들의 이런 태도에서 새롭게 발전된 중국학 연구의 관점을 볼 수 있다.
이는 근현대의 일본 학계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대어 온 서구 인문학적 관점이 중국의 진정한 이해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자각적 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학은 중국 자체의 사회적 실상과 그것을 지배했던 그들의 삶의 체계로써 파악해야 한다는 관점에 입각한 엄밀한 실증과 추론이 돋보이는 것이 이 저작이다.
이 저작은 오늘날 한국에서의 중국 연구이든, 아니면 예송(禮訟), 향약과 계의 확대 및 종족적 집성촌의 강화, 성리학의 확산과 심화, 예학의 성행 등으로 관찰되는 조선 후기 사회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든 하나의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미조구치 유조 외 지음 동국대 동양사연구실 옮김
355쪽 1만3000원 청계
유권종(중앙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