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유럽史 바꿨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산업혁명이라고 답한다. 산업혁명은 사람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방식뿐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심층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철도 여행의 역사’(궁리, 1999)는 산업혁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철도의 예를 통하여 포괄적인 변화의 과정으로서 산업혁명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19세기 전반 서유럽에 등장한 철도가 상징한 것은 단지 기술 분야의 혁신만이 아니었다.
◇ 19세기산업혁명의주역
철도의 등장은 일상의 현실이 갖는 의미가 산업혁명을 통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예컨대 철도의 출현은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소멸을 의미했다.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시간은 철도가 나타나면서 통일됐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이었던 각 지방은 철도로 연결되면서 철도망의 일부로 종속됐고, 그 사이의 공간은 의미를 상실했다.
철도를 통해 여행은 산업화됐다. 산업화된 새로운 여행은 여행객과 풍경이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도보나 말을 이용한 전통적인 여행과는 달랐다. 일직선으로, ‘총알’처럼 풍경을 관통하는 철도여행에서는 풍경의 현실성은 휘발돼 버리고, 그에 대한 인상만이 파노라마로 부활하였다. 그것은 마치 백화점에 집결된 다양한 상품들이 개별적인 사용가치를 잃어버리고 단지 가격표에 의해 인식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철도 여행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경험이었으나, 그것을 통해 여행객 사이의 사회적 구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철도 여행은 부르주아가 주도한 19세기 유럽 사회의 계급관계와 문화를 반영했다.
◇ 도시설계에 결정적 영향
등급화된 객차와 폐쇄적인 객실 구조는 부르주아의 특권과 우월 의식 그리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여행 중의 행태에서도 부르주아는 구별됐다. 부르주아의 객실에서는 담소가 사라지고 독서가 소일거리로 등장했다. 또한 객실이 고립됨으로써 발생한 각종 범죄와 이에 대한 부르주아의 두려움도 부르주아가 거둔 성공의 부산물로서, 부르주아 문화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었다.
결국 ‘철도 여행의 역사’는 철도를 통해 살펴본 19세기 유럽의 사회와 문화의 역사다. 철도가 어떻게 건축, 도시 건설, 가구, 병리학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철도와 무관한 현상에까지 눈길이 미치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이 놀랍다. 이 책이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으며 독일 실용서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안병직(서울대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