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경주임씨 집성촌조상의 묘소를 지키고 있다
“옆집이 큰어머님댁, 아랫집은 사촌형님댁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가족이죠.”
서울 중랑구 신내1동 산6 일대. 400년 동안 경주 임(林)씨 집성촌 마을을 이루며 삶터를 가꿔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깍쟁이’ 서울 인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 주민들은 ‘서울사람’이지만 ‘서울사람’이 아니었다.
주민 임현만씨(55)는 “하루종일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며 “서울하늘 아래 이런 곳이 또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임씨의 아들 임준성씨(25·수원대 응용통계학과 2)도 “집안 어른들과 가까이 살게 되니까 예의범절이 저절로 몸에 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 경주 임씨 선조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조 36년인 1603년경.
한때 80가구에 달했지만 6·25전쟁을 거치면서 60가구 정도로 줄어들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곳으로 직장을 얻어 옮겨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장손들은 대부분 집안의 명맥을 잇기 위해 ‘향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조상들의 묘를 지키며 오랫동안 ‘모여 사는 정’에 익숙해져 좀처럼 외지로 나가기가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70년대 초부터 이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의 외풍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
주민 대부분은 먹골 배 농사로 생업을 삼고 있지만 자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임준성씨는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세대에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라면서도 “그러나 신내동 임씨마을 명맥만은 끝까지 이어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임씨 마을에서 차로 10분 정도 더 달리면 중랑구 망우동 259 일대 동래 정(鄭)씨의 집성촌이 나타난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구가 태조 이성계로부터 이 일대의 토지를 하사받으면서 16대를 내려온 집성촌의 터전이 마련됐다. 임씨 마을보다 200년 더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성’ 때문에 서울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집성촌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30여가구 정도가 남아 있는 정씨의 후손 중에는 유난히 공무원이 많다. 전체 가구 중 3분의 2 정도가 공무원이다. 국립과학연구소, 한국전력, 철도청, 서울시 등 담당 분야도 다양하다.
이곳에서 25년간 동장을 맡아 온 정수선씨(68·새마을금고 이사장)도 두 아들이 공무원.
그는 “조선 태조가 망우리 고개를 넘다가 마셨다는 우물터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이 마을에 관직 복(福)이 많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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