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다닌 안산 L백화점에 입사한 것은 상고 3학년에 다니던 해 가을이었다. 처음 일하게 된 곳은 남성의류 매장. 이후 매장관리를 거쳐 판매사원 관리를 맡았다. 출퇴근 시간과 근무태도, 상품진열 등을 점검하는 게 일이었다.
남들은 힘들지 않으냐고 많이 물었지만 내겐 백화점 일이 적성에 맞았다. 원래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해서 그런지 회사 생활은 즐거웠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막연히 ‘디자인을 해 봤으면…’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백화점 곳곳에서 마주치는 상품 포스터와 카탈로그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가끔씩은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식의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나에게 디자이너는 너무도 멋있는, 선망의 직업이었다. 직장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가끔 한번씩 가슴앓이를 하곤 했다.
앞으로 결혼 후의 장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하자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박하게 다가왔다. 예쁜 그림과 글씨로 매장 장식물을 몇 번 만들고 난 후 ‘바로 이 일이다’란 느낌이 왔다. 주저없이 새로운 진로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98년 가을이었다. 1달 동안 쉬는 날이면 무작정 영등포와 대학로를 헤매며 학원을 물색했다.
처음엔 진학을 할 것인가, 학원을 다닐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는 별 매력이 없는 것 같았다. 입시준비도 해야 하는 등 준비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학원쪽으로 기울어지게 한 것은 ‘학벌보다 실력이 더 중요하다’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은 정보를 종합해 대학로에 있는 Y학원에 들어갔다.
1년간 다닌 학원에선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배웠다. 포토샵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 조작법과 디자인 이론을 기초부터 배웠다. 평소 관심이 있던 3차원 그래픽과 영상편집 등 멀티미디어 디자인도 공부했다.
그 당시엔 한참 인터넷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몇 번 서점을 기웃거리다 웹디자인 책을 사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학원에 다니는 틈틈이 HTML언어, 자바 등을 1년 정도 공부했다. 처음 배울 땐 힘들었지만 하다보니 점점 쉬워졌다. 이쪽 공부도 ‘자전거 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만 할 줄 알면 나머지는 저절로 되는 식이었다.
학원 졸업후 디지털 영상물 편집일을 하다가 웹디자인을 공부해둔 것이 도움이 돼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여기선 인터넷 홈페이지의 기획과 제작을 모두 전담하고 있다. 백화점에선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데 이곳에선 그 이상을 요구해 좀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틀에 박힌 백화점 생활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즐겁기도 하고 말이다.
(엑스게이트 근무·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