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축구는 힘있고 멋있으며 수비 축구는 치졸하고 답답하다고 말한다. 질 때 지더라도 공격을 해야 맛이 난다고 한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해서 비기는 것 보다는 차라리 화끈하게 공격하고 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수비축구를 구사한다는 굴레를 씌워서 감독의 능력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프로 축구는 어떤가? 수비 축구에 거친 경기 운영을 하기 때문에 점수가 많이 나지 않고, 화려한 기술과 멋진 골이 터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축구 팬들은 프로 축구를 외면한다고 말한다. 유럽의 빅 리그에서는 모든 팀이 공격적이며 점수도 많이 나고 멋진 골도 많이 터진다고 한다.
과연 공격 축구는 무엇이고 수비 축구는 무엇인가? 그렇게도 공격 축구가 좋은데 왜 한국 축구는 프로 팀이건 대표 팀이건 수비 축구의 오명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수비 하나는 정말 빠삭하게 잘 하고 있는가? 천만에… 막상 대표팀의 경기가 벌어지고 우리보다 강한 팀을 상대할 때는 어김없이 ‘수비불안’ 문제가 지적되곤 한다. 수비축구로 일관하는 프로 리그 출신 선수들이 수비가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코미디,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를 가진 팀이 또한 수비 문제로 욕을 먹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을 할까…
필자의 개인적인 억지일 수도 있지만 현대 축구에서 수비 축구와 공격 축구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단지 특정 경기를 치름에 있어서 수비를 강화하는가 공격을 강화하는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공격 축구와 수비 축구를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팀 컬러를 놓고 공격 축구니 수비 축구니 하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제발 애매하게 수비 축구, 공격 축구 떠들어 가면서 애매한 감독 목 조르는 일좀 하지 말자. 차범근도 허정무도 히딩크도… 그 누구도 수비 축구를 택하지 않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달콤한 말은 ‘공격은 수비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속에 감추고 있는 것 아닐까?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대형을 한 번 보자.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 사이의 폭이 대략 30미터 이내에서 움직이며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윙백의 측면 공격 지원은 이따금씩 벌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공격을 전개할 때에는 수비수가 공격의 시발점이며 포지션에 강하게 구애 받기 보다는 상황 상황에 맞게 자기 위치를 찾아서 움직일 줄 아는 수비수들이 환영 받고 있다.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도 마찬가지다. 수비에 가담한다고 해서 공격수가 자기진영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 진영에서 시작되는 상대편의 공격(역습) 타임에는 최전방 공격수라 할지라도 그 위치에서 1차적인 수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수비라인을 하프라인까지 끌어 올리며 상대를 압박해 나간다.
즉, 이제는 공수의 지역적인 역할 구분이 더욱 약해졌으며 선수들은 공격과 수비를 함께 소화해 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 상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때 그때의 공격 혹은 수비 요구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수비 대형은 점점 약화되고 있으며, 수비수라는 포지션은 단지 선수의 포지션 구성상 맨 마지막 줄에 위치할 뿐이다. 그들의 활동 범위가 나머지 포지션의 선수들과 다를 뿐, 그들의 역할이 수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체력, 스피드, 기술, 전술… 이 모든 축구의 요소들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꾸준히 발전되고 개량되었다. 극단적인 압박, 다중 포지션의 소화, 그리고 쉴 새 없이 공간을 좁히고 메워 나가는 기동성 있고 고도화된 조직력으로 표현되는 것이 요즘 잘 나가는 팀들의 컬러이며 하나의 공통적인 수비 모습이기도 하다.
흔히 하는 말이다. 한국은 수비가 약하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수비 지역에서의 수적 위치는 상대방을 압도하고도 남지만, 한 순간에 뚫려 버리거나 슈팅 지역에서 순간적으로 방어에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한국의 수비가 약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팀들에 비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수비수들 때문에 우리가 강팀에게 맥없이 나가 자빠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수비를 펼치는가 하는 점이다.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경우 전통적인 수비 형태를 많이 따르는 편에 속한다. 전통적인 수비 형태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 공격수가 우리의 수비 라인을 뚫지 못하게 방어하거나 슈팅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말고 더 이상의 다른 수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요즘 잘 나가는 팀들을 보자.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하지만 일본 팀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수비 보다는 미드필드와 공격 진영에서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응 형태가 더 많이 보인다. 우리에 비해서 공격수들의 태클과 반칙이 더 많은 편이며 수비 상황에서 미드필드로 몰려드는 숫자 또한 장난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상대 팀 공격 -> 수비 -> 우리 팀 공격 순서로 게임이 전개되는 형태가 전통적인 축구 경기의 양상이었다면, 오늘날의 경기 양상에서는 상대편의 공격 타이밍에 맞설 때 ‘수비 후 공격’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격’으로 단순화 되었다는 말이다.
태권도 경기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상대 선수가 발차기를 날리면 그것을 막은 후에 차는 것이 아니라, 몸을 비틀면서 곧장 반격 발차기를 날린다. 거의 동시 타이밍에 벌어진다. 현대 축구의 공격-수비 양상이 이러한 꼴을 띈다는 말이다. 결국, 프랑스는 이와 같은 형태의 태권도를 펼치는데 비해서 우리는 막고 치는 스타일의 태권도 경기를 하는 셈이다.
수비는 축구 경기의 제1조건이다. 심지어 수비는 ‘필수’이고 공격은 ‘선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수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오늘날의 축구 경기에서는 수비를 강화한다는 말이 공격을 소극적으로 전개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비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팀은 공격 기회마저 변변하게 잡지 못한다. 상대가 우리 보다 한 수준 높은 팀이라면, 그들은 분명히 우리 수비수가 공을 잡는 순간부터 강하게 압박하면서 즉각적인 반격을 가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예 공격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몰아 세우겠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프 라인을 돌파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되며 전방으로의 롱 패스나 백 패스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의 도망자가 되는 것이다. 경기를 지배당하고… 결국은 패하고 마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형태의 수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의 대표팀이 그러한 모습에서 조금씩 탈피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선수들 스스로가 그러한 축구에 맞게 성장하기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K-리그와 유럽 빅 리그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앞으로 우리 대표팀의 변화를 지켜볼 때 이러한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발전된 형태,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비를 소화해 낼 수 없다면 한국 축구는 세계적인 강팀들과의 수준차이를 좁히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일본 축구는 이미 이러한 스타일의 수비에 상당히 단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처럼 굵직한 수비수들을 보유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경기 운영과 수비는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수비의 개념이 단순히 수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드필드의 강화이며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공격력이기도 하다. 특히,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우리보다 한 수 위의 팀을 상대한다면, 힘과 세력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부터 네덜란드전이나 프랑스전 같은 악몽은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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